자다가 새벽에 눈이 떠졌다. 아래가 따뜻하게 젖은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가 쏟아졌고 속옷은 물론 바지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순간 유산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피로 젖은 옷을 벗었는데 피는 멈추지 않았다. 다리로 피가 계속 흐르고 욕실은 피바다가 되었다. 변기에 앉으니 피와 함께 덩어리들도 꿀렁꿀렁 나왔다. 이렇게 많은 피가 쏟아지는데 왜 배가 아프지 않지? 남편을 깨워서 난리난 상황을 보여주고 혹시나 해서 물었다.
“오빠, 이거 지금 꿈은 아니지?”
- “어..아니야..“
눈물은 뒤늦게 났다.
멈추지 않는 피를 어찌할지 모르다가 ‘이젠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내 머릿속에서는 임신해서 행복했던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응급실 가기에도 바쁜 이 상황에서 뇌는 과거의 기억을 샅샅이 뒤져 ‘행복했던 임신 브이로그’ 영상 한편을 만들어 냈다.
그 영상에는 남편이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뿐이라서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오빠 미안해, 미안해..”
그때 눈물이 앞을 가려서인지 남편의 얼굴이 기억나진 않지만 오히려 내가 남편보다 침착했었던 모양이다. 응급실에 누워 조금 안정을 찾았을 때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말하길 그때 아기고 뭐고 홀아비가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우리에게 유산은 피범벅으로 강렬해진 현장감 때문에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