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ooje 주제 Oct 24. 2021

Home, sweet Indian home

주제 in 인도 그림 여행기 - 블루시티 조드푸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촬영한 사진. 낯선 땅에서 그래도 머물 곳을 찾았단 안도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블루시티에서 머물렀던 LG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과 가족들은 따듯하고 친절했다. 붙임성이 좋은 원석이와 함께 나도 덩달아 그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사장님의 딸 리티카는 헤나 아티스트였다. 직접 디자인한 도안으로 투숙객들에게 헤나를 해주면서 어린 나이에 스스로 용돈을 버는 그녀가 대단해보였다. 실제로 솜씨도 아주 좋아서, 우리는 한껏 들떠 인도에서의 첫 헤나를 리티카에게 받았다. 리티카는 성격이 매우 활발해서 다른 손님들과도 곧잘 친해지는 모양이었다. 사장님은 때때로 리티카가 사람들에게 너무 스스럼없이 다가간다며 '데인져러스 걸'이라고 웃으며 걱정아닌 걱정을 하셨다. 리티카에겐 남동생 하르수가 있었는데, 의젓하고 영어도 잘했다. 하루는 게스트하우스 루프탑에 앉아 있던 우리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져서 하르수에게 메뉴판의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문했다. 왠지 조금 오래 걸린다 싶었지만 천천히 기다리던 그때, 한참을 보이지 않던 하르수가 헐레벌떡 계단을 올라왔다. 아이스크림이 다 떨어져, 저 밑 가게까지 가서 우리를 위해 직접 아이스크림을 사온 것이었다. LG게스트하우스는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래에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게 힘들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아이스크림 없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했을텐데, 직접 사다주는 그 마음에 무척 감동했다. 이건 분명 전세계 어디서도 다시 받기 힘들 마음이 담긴 서비스, 우정의 선물이었다.


하르수가 사다준 아이스크림! 조금 녹아있었지만 꿀맛이었다.


   사장님은 우리가 꽤 마음에 드셨는지 인근에 사는 친척의 결혼식에 초대하셨다. 그치만 결혼식 날짜는 약 일주일 뒤로, 계획대로라면 진작 LG를 떠나 자이살메르를 여행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이를 말씀드리자 사장님은 무척 아쉬워했다. 사실 정말 아쉬운 건 우리였다. 인도 현지인의 결혼식을 가본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흔치 않은 기회였다. 남은 여행 일정을 짚어보며 우리는 결국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자이살메르에 갔다가 다시 조드푸르에 오자! 사장님과의 의리를 지키고 다신 없을 경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장님께 우리의 계획이 변경되었음을 알리자 그는 정말 뛸듯이 좋아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자이살메르에서 다시 조드푸르에 돌아왔다. 같은 도시를 두 번 들를 줄이야. 그치만 사장님과 배로 소중하게 간직될 우정을 생각하면 망설일 것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사장님께선 우리가 진짜 돌아온 것에 크게 감동하셨다고 했다. 다시 올거란 약속 후 이를 정말로 지키는 게스트는 우리가 처음이었다며. 그 말을 듣자 더더욱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계획이 며칠 어긋나면 어때. 그게 여행인걸.


리티카가 빌려준 옷으로 차려입은 모습. 악세서리에 화장까지 풀세트로 도와준 결과물이었다!
잔뜩 신이 난 리티카와 나.



   돌아온 우리를 위해 사장님과 가족들은 이른바 '인도식 하객룩' 마련을 도와줬다. 리티카는 게스트하우스 건물 아래 본인들의 진짜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자신이 입는 의상은 물론 어머니, 할머니 옷을 보여주면서 입지 않는 걸 내게 흔쾌히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 화려한 인도 전통의상을 원없이 걸쳐보게 됐다. 결혼식날 리티카는 날 위해 옷을 입혀주는 건 물론, 인도식 화장까지 척척 도와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결혼식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는 단순히 한 가족의 맺어짐이 아닌 마을 전체의 축제였다. 마을 한 공간엔 제법 성대한 음식 뷔페가 마련되었고 모두가 자리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다. '찐인도'식인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경험을 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여태껏 우리가 방문한 레스토랑은 여행자를 주로 상대하는 곳들이라 수저 등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현장은 역시 로컬 그 자체, 날것의 인도였으니 당연하게도 수저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리티카와 친구들 눈치를 봐가며 열심히 손을 놀렸다.


   저녁이 되자 주인공인 꼬마 신랑은 백마에 올라타고 퍼레이드하듯 사람들과 함께 마을 골목을 돌았다. 흥을 돋우는 북 소리, 꽹과리와 비슷한 악기 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계속 춤을 췄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무리와 발을 맞춰 거리를 누비니 무척 신이 났다. 인도인들의 흥이 엄청나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체험해보니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온갖 군무로 꽉 찬 발리우드 영화를 눈 앞에서 보는 느낌이랄까? 인도인들 대부분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자주 마시지 않지만 이런 경사가 있는 날엔 예외인지 약간의 알코올도 함께였다. 인도 의상을 치렁치렁 걸치고 흙바닥에서 춤을 추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도 여성들은 개의치 않고 춤을 췄다. 파티는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끝날 줄 모르고 지속되었다.


말로만 듣던 '백마 탄' 신랑과 주위를 둘러싼 행렬! 신나는 파티의 현장이었다.

   이날은 단언컨대 내 인도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로컬적이고 진귀한 밤이었다. 낯선 여행객을 흔쾌히 초대해준 것도 모자라 어색하지 않게 옆에서 함께 해준 LG 가족 모두에게 감사했다. 그때 결혼한 신랑과 신부는 행복하게 살고있을까? 부디 별일 없이 다정한 한때를 보내고 있길. 먼 한국 땅에서나마, 일생의 한 순간을 함께 했다는 가까운 인연의 마음으로 축복을 보냅니다.


   이렇게 추억이 방울방울 쌓였으니, LG를 정말 떠나야 했을 때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던 건 당연했다. 헤어지는 날 사장님께서 버스 티켓를 대신 끊어주신 덕에 우리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다음 여정을 쉽게 준비할 수 있었다. LG 가족과 우리는 오랜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사장님께선 마지막으로 나를 '마이 도터'라 불러주셨는데, 그 말에 아쉬움과 감동이 훅 밀려왔다. 하르수는 몇 년안에 있을 리티카의 결혼식에 꼭 오라며 메시지를 보내겠다고 거듭 말했다. 모두와의 포옹과 악수,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릭샤에 몸을 실었다. 꼭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면서.


   그해 여름, 나는 사장님께 잘 지내시냐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인도를 다시 가게 되었다면서, 일정이 허락한다면 꼭 LG에 들리겠노라고 전했다. 그러자 사장님께 온 답장은 'so sweet' 그 자체였다.

"You are most welcome. It's not a guest house, it's your home."

   먼 인도땅에 인도 아빠와 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어찌 마음이 벅차지 않을까.


우리가 떠나는 날 리티카가 자신의 팔에 새긴 헤나. 우리 셋의 이름을 모두 한글로 묻더니 헤나펜으로 척척 완성했다.


이전 06화 '김종욱찾기' 조드푸르에서 꼭 가야 한다는 그 오믈렛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