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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oje 주제 Oct 24. 2021

무엇이 쏟아지든 깊은 강은 품으리

주제 in 인도 그림 여행기 - 갠지스를 품은 도시 바라나시





   바라나시에서의 낮을 생각해보면 특별히 한 게 없었다. 매일 아침 강가, 즉  가트에 가서 짜이를 사먹고, 실팔찌를 샀다. 저녁에는 선재가 운영하는 보트투어에 참여했는데, 그때 바라나시의 진가는 해가 진 뒤에 드러난다는 걸 알았다. 보트투어는 가트에서 진행되는 힌두교 의식인 뿌자 의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강 건너 사구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등 꽤 알찬 코스라 바라나시 여행객들에겐 거의 필수로 여겨진다. 보트를 탄 채 강에서 바라보는 가트는 또 새롭게 다가온다. 화장터의 꺼질줄 모르는 불빛과 음악 소리, 모여든 사람들의 일렁이는 그림자가 뒤섞이면서 오직 바라나시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디아'라는 작은 초에 불을 붙인 뒤 강물에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빌면 보트 투어는 거의 마무리된다.


   당시의 나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따로 메모는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소원이란 보통 미래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되는데, 그때의 나는 그 순간에 흠뻑 빠져있었다. 여행의 순간이 주는 행복감에 벅차 현재를 누리기에도 정신없이 바빴다고 할까. 그렇게 지금의 행복이 길게 반짝이길 바라며, 애틋한 마음으로 촛불을 띄웠다.



하나씩 불이 붙여지는 디아. 저마다의 소원을 태운 채로 강물에 두둥실 몸을 싣는다.


내가 반했던 바라나시의 밤. 해질녘 어스름과 가트의 불빛이 조화를 이룰 때야말로 바라나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가끔 바라나시는 더럽고 복잡한 도시라며 폄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난 그들이 밤의 바라나시를 보지 않은 걸까 의문이 든다. 화장터와 가트에 불이 켜지면 갠지스의 강물은 덩달아 반짝였고 그 광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만약 그들이 밤을 경험했는데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면 난 그들의 지나친 상상력을 탓하고 싶다. 또렷하게 빛나는 바라나시의 밤 풍경 속에서 갠지스의 수질이 얼마나 더러울지, 물살을 타고 무엇이 떠내려가는지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남색빛 하늘과 하나가 되어 흐르는 강물, 뿌자의식의 소음에 섞인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 차례로 떠다니는 투어 보트와 어디론가 떠나가는 디아까지. 모두 혐오의 시선을 거두면 비로소 보이는 진풍경들이었다. 이들은 단단하게 어우러져 바라나시를 완성하고 있었고 '수질' 등의 이름으로 평가절하되기엔 너무나 소중한 알맹이들이었다. 


   감동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은 없다. 그치만 내가 아는 바라나시는, 아마 그마저도 품어버릴 것이다. 죽음 앞에선 이 땅 위 모든 존재가 용서받듯 미움마저도 품어내는 어떤 초월적 넓음이, 바로 갠지스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의 갠지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색의 감정들을 매번 깊숙이, 그리고 익숙하게 받아낼 것이다. 모든 살아있던 것을 포용하듯, 죽은 감정과 살아있는 혐오조차도 녹여내며 흐를 것이다.




   마침내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이 왔다. 첫 날엔 시간이 멈추길 바랬지만 둘째, 셋째 날부턴 왠지 그런 욕심이 들진 않았다. 그냥 생각했다. '다시 오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하니 크게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난 이 공기 아래 다시 설 것이고, 잠깐 떠나있는 것뿐이라고. 안녕, 또 올게. 그때는 좀 더 오래, 진득하게 만나자. 갠지스와 그곳의 모든 영혼들에게 인사하면서 나는 돌아섰다.



보트투어 중간, 아마도 선재가 찍어줬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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