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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oje 주제 Oct 24. 2021

그저, 가장 인도다운 도시

주제 in 인도 그림 여행기 - 갠지스를 품은 도시 바라나시



바라나시의 흔한 일상



   사실 내가 인도에 가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라나시였다. 처음 여행 계획을 하면서도 바라나시엔 꼭 일주일은 머물러야지 생각했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자꾸 지체되는 일정에 결국 바라나시에 허락된 시간은 단 삼 일이었다. 아쉽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보내야겠다고 다짐하며 홀로 슬리핑버스에 올랐다. 원석이와의 일정 차이로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하게 되어 걱정도 들었지만 다행히 버스 안엔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한국인이 유독 많아 붙여진 별명이라는 '경기도 바라나시'란 말이 도착 전부터 실감나기 시작했다. 버스 칸막이와 커튼 너머로 간간이 들려오는 익숙한 언어에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고 잠을 청했다. 


   도착한 뒤엔 낑낑 대며 예약한 숙소를 찾았다. 바라나시의 골목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했다.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골목의 연속인데다 데이터 연결까지 수시로 끊겨 무척 당황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드문드문 보이는 한국어 간판덕에 무사히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체크인 후 방에서 쉬다가 한낮이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딱 삼 일,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도착한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갠지스강의 색깔조차 못 보다니. 조급해하며 서둘러 길을 나섰는데, 구불구불 골목의 연속인지라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 강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을 잃을 것 같다는 걱정에 식은땀이 났다. 그렇게 얼마를 헤멨을까.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려 애쓰면서, 아직 가지 않은 방향으로 다시 한 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눈 앞의 어느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드디어, 강을 따라 만들어진 가트가 보였고 거기에 갠지스가 있었다. 순간 벅차오르는 마음에 작게나마 안도와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결국 내가 여기 왔구나!



바라나시의 첫인상. '소란한 평화'란 게 있다면 바로 갠지스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흐르는 강물과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홀린듯이 돌계단에 앉았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다국적 관광객들, 강물에 몸을 씻는 힌두교 신자들과 뒤섞여 그저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문득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내가 인도를 그렸던 이유, 내가 인도에 온 이유를. 난 바라나시를 찾고 있었던 거야. 그저 여기에 지긋이 있고 싶었던 거였어. 시간의 흐름은 잠깐 못본척한 채로 강물의 흐름에만 집중하면서. 바라나시의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보는 그런 경험을.




   인도에서 만난 여행자들에게 가장 좋았던 인도 여행지를 물으면, 대부분은 바라나시를 꼽았다. 이어서 그 이유를 물을 때마다 돌아왔던 대답은 "그냥", "잘 모르겠다"였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 묻는다면 내 대답도 그와 같다. 그냥 이유없이, 바라나시가 좋았다. 이유 없음이 이유인 도시. 어쩌면 바라나시엔 하나의 이유로 묶어내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모두가 설명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닐까. 강 한켠의 화장터에선 생을 마감한 자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옆에선 각자의 염원을 간직한 자들이 강물에 몸을 씻어내린다. 빨래를 말리는 사람들과 뛰어노는 아이들, 그저 느긋해보이는 개들, 짜이를 팔고 요가를 하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감정으로 가트에 서있다. 그리고 그곳엔 그 옆을 지나치거나 이미 풍경과 하나가 된, 도시의 낯선 자들이 있다. 감히 '이유'라는 말로 멋들어지게 바라나시를 포장해내기엔, 그 안에 형용할 수 없는 사연들이 너무 많기에. 우리는 바라나시를 차마 어떤 이유로 좋다고 선뜻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굳이 표현을 짜내자면 나는, '가장 인도다운 도시'라는 표현으로 겨우 말을 맺을 수밖에 없다. 산 자와 죽은 자, 떠날 자와 머무는 자가 공존하는 이 세계를 어찌 다른 단어를 써서 표현할까. 그저 인도가 바라나시고, 바라나시가 인도인 것을.



   가트에 앉아 햇살 아래 누워 자는 강아지를 그렸다. 인도 거리엔 개가 소만큼 많았는데, 바라나시의 개들은 어쩐지 더 여유롭고 행복해보였다. 이런 곳이 집인 그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바라나시의 라씨는 유난히 푸짐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과일 토핑을 선택하면 라씨가 제법 큰 보울에 한가득 담겨 나오는 식이다. 보드랍고 산뜻한 라씨와 신선한 생과일이 어우러지는 그 맛은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일 정도다. 이걸 먹기 위해 매일 라씨 가게에 출석했는데, 다양한 과일 조합 중에서도 난 망고와 석류 토핑을 가장 좋아했다. 위에 흩뿌려진 초록색 가루는 허브인지 향신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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