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ooje 주제 Oct 24. 2021

낭만과 만남, 그리고 상아빛 사랑

주제 in 인도 그림 여행기 - 화이트시티 우다이푸르

선셋포인트


   우다이푸르의 선셋포인트는 말 그대로 노을지는 풍경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제법 높은 곳이었던 만큼, 올라가 앉았을 때 온 도시가 발 아래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떨어지는 그날의 태양은 아득히 멀게 느껴졌지만 붉게 물든 하늘과 그 공기로 둘러싸인 느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다. 날씨 운이 따라준 덕에 깨끗하게 똑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온전히 바라보게됐다. 그날의 분위기, 온몸으로 느낀 노을의 색감은 내 기억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붉은 사탕처럼 태양이 똑 떨어지는 일몰을 사랑한다.




   우다이푸르에서 우리는 아주 특별한 장소에 방문했다. 바로 Animal Aid란 동물구호단체였다. 전세계에 지부를 둔 곳으로 우다이푸르 보호소에선 인도 길거리에서 다친 소, 개, 염소 등 다양한 동물들을 보호 및 치료하고 있다. 원석이는 이곳을 꼭 가보고 싶었다며 내게 소개해주었고 1일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나도 흔쾌히 동행을 결정했다. 도착해보니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이 정말 많았고, 자원봉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그들을 돕고 있었다. 모두 차량 사고나 각종 질병 등으로 인해 재활이 필요한 상태였다. 한눈에 봐도 야위었거나 아파보이는 친구들을 보니 마음이 무척 쓰렸다. 사고로 앞다리를 잃고 바퀴 달린 보조 기구를 이용해 걸음을 내딛는 개를 보고선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1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안내자를 따라 보호소 곳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각자 맞은 예방접종과 경험 등에 따라 다양한 일을 배분받았는데, 우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 개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아 반나절 간 일손을 도왔다. 다행스러운 일인지 대부분의 개들은 기운찼고 우리는 그들이 걷다가 어딘가에 부딪히지 않도록 보호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친절한 다른 봉사자분들의 도움으로 뿌듯함 가운데 무사히 일을 마쳤다. 후원금을 내고서 귀여운 동물 캐리커처 티셔츠를 구매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거리에서 정말 많은 종의 동물들을 보게 된다. 그 대부분은 그저 방치된 채로 길거리에서 살아간다. 아파도 아픈 채로 살 수 밖에 없었을 그들들을, 이렇게 보살피는 손길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장기 자원봉사자들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인도인뿐 아니라 캐나다, 미국, 유럽인 등 보호받는 동물 종들 만큼이나 국적 또한 다양했다. 인간이 저지른 일로 아파하는 동물을, 다시 인간이 치유하고 길러내는 현장. 이 한없이 미안하고도 너무나 다행스러운 순환 앞에 안도하며 모든 거리의 생명들이 아프지 않길 기도했다. 여행 기간이 길었다면 며칠을 더 오가고 싶을 정도로 뜻깊은 체험이었다.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땐 이곳의 동물이 많지 않길.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뛰노는 광경을 보게 되길 바라 본다.



아파도 씩씩했던 강아지와 함께 했던 반나절. 이곳에서 산 티셔츠는 여전히 집에서 잘 입고 있다.




   역시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우다이푸르는 '사랑의 도시'가 맞다. 사람과 사람이 맺어지고, 동물과 사람간의 연대가 피어나는 곳. 때묻지 않은 순수한 상아빛 감정의,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사랑이다. 작 만디르에서 은신했던 샤 자한이 훗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결과물인 타지마할을 만든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던 이 도시의 '사랑'이란 정체성이, 그의 마음 속에 낭만의 씨앗을 심은 건 아닐까? 그 정체성의 강력한 힘은 몇 백년 후에도 모여드는 도시 속 커플들이 열심히 증명하고 있다. 초록빛 나무들 사이로 반짝이는 흰색 도시와 강물의 윤슬을 홀린듯 바라보고 있노라면, 열에 아홉은 꼼짝없이 설득되고 만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역시 우다이푸르는 사랑의 도시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일몰을 지긋이 보고 있자면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공기를 밝히기 시작한다. 화려함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우다이의 밤이 좋았다.
우다이푸르의 시티팰리스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아름다웠다.


이전 08화 사랑에 빠진다면 우다이푸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