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칼립소를 떠나는 날

[헤드 미솔로지 Ep.01] 오디세우스에게 배우는 선택의 힘

by Tristan


/ 그는 왜 가장 늦게 돌아왔을까


트로이 전쟁이 끝났다. 영웅들은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 사람만 돌아오지 않았다. 바로 오디세우스였다.

'목마의 계략'으로 전쟁의 승부를 결정지은 지혜로운 왕. 모든 동료가 집으로 향할 때, 그만 홀로 바다를 떠돌게 된다. 무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여정 중 가장 오래 머문 곳이 있다.


칼립소의 섬이었다.


이미지: Ditlev Blunck, Odysseus on the Island of Calypso, c.183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너무 완벽한 감옥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에게 영원한 젊음을 약속했다. 불멸의 삶도, 끝없는 쾌락도 주겠다고 했다. 섬은 아름다웠고, 음식은 풍족했으며, 칼립소는 그를 극진히 보살폈다.

객관적으로 보면 완벽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행복하지 않았다.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고향 이타카를, 아내 페넬로페를, 아들 텔레마코스를 그리워했다.

완벽한 감옥 속에서 그는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 우리도 칼립소의 섬에 산다


이 이야기가 수천 년 전 신화인데도 왜 이렇게 와닿을까?

우리도 지금 그 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잃어버린 일상의 루틴 속에서, 애써 유지하고 있는 무기력한 관계 속에서, 성장은 멈췄지만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편이야"

"떠나면 더 힘들어질 텐데"

이런 말로 자신을 위안하면서, 우리는 편하지만 불편한, 자유롭지만 갇힌 그 섬에 머물고 있다.




/ 떠남을 결심한 순간


신들이 개입한다. 제우스가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보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오디세우스 스스로가 떠나겠다고 결심했을 때 시작됐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이라 부른다. 외부의 압력이 아닌 내면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 삶의 방향을 다시 선택하는 힘.

오디세우스는 기억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그는 더 이상 칼립소의 사랑받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 떠남은 도피가 아니다


"그냥 도망가는 거 아냐?"

많은 사람들이 떠남을 회피나 포기로 해석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떠남은 달랐다.

그는 더 큰 책임을 지기 위해 떠났다.

왕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떠남을 성장 지향적 선택이라고 한다. 편안함을 버리고 의미를 찾아가는 용기.

진짜 용기는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다.



/ Tristan의 코멘트


삶에는 떠나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시기를 알아차리면서도 스스로를 설득한다.

"지금 떠나면 모든 게 망가질 수 있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정말 그럴까?


진짜 괜찮은 사람은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다고 넘기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 앞에서 답을 찾았다.

"당신은 지금,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선택한다.

익숙한 섬에 머물 것인지, 조금 낯선 바다를 향할 것인지를.




/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도 지금 떠나야 할 '칼립소의 섬'에 있나요?

그리고 떠나야 할 시간을 고민하고 있나요?


이 글은 Tristan의 연재 시리즈 「헤드 미솔로지」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신화 속 인물을 통해 오늘의 나를 성찰하고, 삶의 방향을 다시 그려봅니다.



/ 다음 이야기 예고

「휴브리스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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