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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Jul 29. 2023

10세는 뚜거리탕이 좋다고 했다(2)

- 파랑새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뚜거리탕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2호의 상태는 점차 '메롱'이 되어갔다. 배가 심하게 고팠던 것이다. 그렇다. 나를 닮았다. 배가 고프면 엄청 짜증이 난다. 예전에는 잘 몰랐다. 근데 이제 안다. 사람은 잘 먹고, 잘 자는 게 아주 중요하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가방 한구석에 사탕을 넣어 다닌다 (현명한 할머니들이 하는 바로 그 행위. 모르는 사람 입에도 사탕을 까서 넣어주는 그 인류애 같은 마음을 나도 넣어...) 그러나 오늘은 없었다. 수업 때 초콜릿을 사가, 아이들에게 다 나눠주고 왔는데 한두 개만 챙길 걸 하는 후회가 배고픔과 함께 뒤늦게 밀려왔다. 그래도 인간은 희망의 동물이다. 배고픔 상태에서도  뚜거리탕이란 '희망'을 향해 갔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드디어 양양의 'ㅊ'식당에 도착했다. 두 부자가 함께 본 프로그램에 나온, 그 식당이었다. 그런데 식당 앞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차도 별로 없고, 내부가 캄캄했다.  저녁 7시. 네이버에 따르면 아직 영업시간인데... 설명 한 글자 없이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오늘 재료 소진인 걸까. 줄 서서 먹는 식당은 다른 걸까. 오래 참아온 2호는 힝잉잉 거리기 시작했다. 희망이 툭 끊어진 자리에 파도처럼 배고픔이 밀려온 것이다. 우리는 원래 내일 먹기로 했으니까. 내일 먹자며 2호가 좋아하는 회로 달랬다. 바다니까! 횟집은 많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서. 


검색해 보니 10분 거리에  바닷가 횟집이 있었다. 검색해 내달렸다. 도착하니 다행히 불이 켜져 있었다.  주차하고 들어가는데, 호스를 들고 나타난 주인아저씨가 세상 심드렁하게 말했다. 

"영업 끝났어요!" 

아직 해도 안 졌는데! 7시면 한참 저녁 피크타임 아닌가. 이방인인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집만이 아니라 모든 횟집이 다 닫았다. 이런, 이건 뭐 유럽이 따로 없었다. 유럽 여행할 때 참으로 당황스러웠던 것이 5시 55분만 되면 칼같이 문을 닫던 마트였다. 갑자기 나가라고 했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양양도 그랬다. 다른(?) 양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가 갔던 양양의 가게들은 그랬다. 양양이 서핑의 성지로 떠올랐다더니! 서핑은 유럽(?)스러운 애들이 하는 거라, 분위기가 유럽이 된 걸까.라는 밑도 끝도 없고, 전혀 논리도 맞지 않는 생각을 혼자 했다.  


2호는 울상이었다. 줄넘기 학원의  고단함, 4시간이 넘는 운전의 피로감, 결정적으로 배고픔이 아이를 강타했다. 2호는 비장하게 외쳤다.  


"이건, 지옥이야" 


그러나 여전히 배는 톡 앞으로 나와 동그란 상태였다. 속으로 한 끼 정도 굶어도 괜찮겠다 싶었으나 심각하게 말하는 동그란 얼굴을 보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불쌍하면서도 웃겼다. 그러나 웃으면 화낼 것 같아, 애써 심각한 얼굴로 근처 맛집을 찾아 다시 이동했다. 10분 거리에 수제 버거 맛집이 있었다. 가면서, 설마 거기는 오래 하겠지 했으나 역시나... 또 닫았다. 옆집에 식당이 있겠지 싶어, 그 거리를 두 바퀴 돌았는데. 문을 연 곳은 술집뿐이었다. 서핑 성지라더니 정말 서핑 가게들만 즐비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벗어날 수도 없고 이상한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았다. 





어느새 시간은 8시가 넘었다. 해는 졌고, 바람이 차가웠다. 춥고 배고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어쩌나.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때려야 하나 하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을 때, 신기루처럼 구석에 박힌 '소머리 국밥'집이 하나 보였다. 평소 국밥을 사랑하는 아이지만, 지금은 심드렁했다. 여기는 바다니까, 보다 신선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 집을 향해갔다. 골목 주차를 하다 보니, 바로 앞에 일식당이 보였다. 바닷가에 있는 일식당은 '소머리 국밥'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혹시나 또 '저희 밥 안 해요~"할까 봐 내가 먼저 내려 식당으로 가서 물어봤다. 다른 건 안되고, 회덮밥과 카레만 된다고 했다. 일단 '된다'라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우리를 받아주시는군요!라는 얼굴로 과하게 감동해 사장님을 쳐다봤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유럽풍(?) 사장님 답게 역시나, 심드렁하게 다른 건 안 돼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좋았다. 홍천 출발 약 3시간 30분 만에, 드디어 밥을 먹었다. 

숙성회덮밥이었는데, 아주 쫀득쫀득~ 맛이 좋았다. 야채도 사각거렸고, 간장 소스도 달콤 상큼했다. 아니 무엇보다 너무 배가 고팠다. 맛있었다. 2호는 '이제 살겠다'라고 하며, 몇 번의 숟가락질 끝에 밥을 다 먹어버렸다. 옆에서 보던 남편은 자기의 밥 반을 덜어 2호에게 주었다. 대단한 부성애였다. 나는 안 줬다. 비행기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는가. 일단 나부터 살라고... 나도 배고.... 평소에도 우리 집에서 (덩치는 제일 큰) 남편이 제일 밥을 적게 먹는다. 술만 많이 먹는다. 아무튼 그렇게 지옥을 벗어났다.  

밥을 먹고, 이성을 찾으니 앞에 통닭집도 하나 보였다. 일식은 원래 양이 좀 적으니까. 하면서,  반반 한 마리를 포장해 호텔로 향했다. 호텔의 선택 기준은  단 하나, 뚜거리탕 식당에서 가까운 장소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마침내!! 


뚜거리탕을 향해 갔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회귀다. 역시, 파랑새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이게 뭐라고?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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