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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Sep 02. 2020

더 잘 피 흘리기 위해

김보람 감독 <피의 연대기> ㅣ 


태초부터 지금까지 까마득한 시간을 거쳐오며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엄마가 딸에게, 할머니가 손녀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모니터 앞에 앉아 이 화면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이름 모를 당신을 위해.

더 잘 피 흘리기 위해

- 영화 <피의 연대기>


<오늘의 생각>


  변기에 앉아 적잖이 당황했다. 생리컵 꼬리가 잡히지 않는 것이다. 분명 넣었는데. 이리저리 휘(?) 저어 보아도 닿지 않았다. 순간 내가 안 넣고 넣었다고 착각한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요즘 건망증을 넘어 망각에 이르고 있는데, 증세가 심해진 건가? 하는 자책도 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다시 살펴보니 평소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질 안에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이런 꼬리를 잡고 살짝 공기를 빼야 쑥~  잘 빠지는데 _=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  0.1초 생각하다가 얼른 접었다. 병원에 가면 같은 과정을 더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할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별로 두렵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생리컵 사용 5년 차. 나는 내 몸, 내 질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생리컵이 내려오도록 열심히 케겔운동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생리컵은 내 몸 밖으로 나왔다.



위키백과는 생리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출처 : 위키백과)


공동육아를 같이 하던 한 엄마가 미국에 가게 됐다. '생리컵'을 공구해 온다고 했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지만, 좋다고 했다. 공구라면 빠질 수 없기에 함께 샀다. 그러나 2달 뒤, 생리컵을 받아 든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이건 못하겠다'였다. 생리컵의 외형은 나의 상상 영역 밖에 있었다. 입구는 생각보다 너무 컸고, 설명을 들어도 대략 난감하기만 했다. 이걸 어떻게? 더구나 대학 시절 탐폰의 실패 경험이 있어 지레 겁부터 났다.  



  그러나  '생리컵 공구'방이,  '피의 경험을 나누는 훈훈한 연대의 공간'이 되면서,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대략 10명가량 되었던 멤버들은 제각기 다른 생리주기를 가지고 있었다. 선구자의 경험과 실패, 이에 대한 각종 노하우(유튜브., 방송, 그림, 문서 등)가 매일 같이 올라왔다. 오가는 이야기들과 정보들은 실용! 그 자체였다. 멤버들 중 가장 생리가 늦었던 나는 한 달간 멤버들의 진솔한 경험을 보고 들으며, '아 이거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이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첫날부터 당당하게 생리컵이 내 질 속에 자리 잡았다. 그날 나는 그 단톡방 이름을 바꿨다.


  '이것은 신세계다'!


  생리컵은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내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먼저, 생리 때의 불쾌한 느낌(냄새, 고통)이 사라졌다. 놀랍게도 컵에 담긴 생리혈은 영롱했다. 몸 상태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랐는데 진달래색 같을 때도 있었고, 진한 장미색 같은 달도 있었다. 그 어떤 색이든 자연의 색을 벗어나지 않았다.  냄새 따위는 나지 않았다. 아, 이 고귀한 것이 내 몸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가 나와주었구나.라는 숭고한 느낌은 물론 아니었지만, 꽃을 보듯 참 예쁘다.라는 생각이 그냥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생리하고 처음 인상을 쓰지 않고 나의 생리혈을 본 것이다.

  사실, 신세계는 생리컵을 쓰기 한 달 전에 이미 열려 있었다. 멤버들이 서로의 후기를 공유하면서 나눴던 '솔직하고 실용적이며 따뜻했던 대화'들은 그 후로도 계속 내 곁에 머물렀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5일 정도를 생리를 해 왔지만, 나는 생리 경험을 누구와도 솔직하게 나눠본 적이 없었다. 친언니와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 부끄러웠으니까. 대신 생리가 샜다거나 하는 치욕스러운 기억은 많다. 지금까지 내게 생리 연관 단어는 '아프다. 싫다. 귀찮다'였다, 그러나 생리컵 사용을 함께 시작했던 우리 들은 그 한 달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서로의 생리에 대해, 몸에 대해,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마치 없는 것처럼. 검은 봉지에 싸여서 외면받아온 나의 생리에 대한 첫 인정이자 존중이었다.    


  그 인정과 존중은 1년쯤 지나자, 나 스스로에게도 찾아왔다. 생리를 외면하지 않자, 내 몸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생리 전후로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도 더 민감해졌다. 그리고 내 질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고, 어느 정도의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지 직관적으로 느꼈다. 영화 <피의 연대기>에서 감독은 불현듯 자신의 몸 자체를 더 사랑스럽게, 그리고 모든 여성의 몸 자체를 더 인정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느낌이 생겼다. 생리컵이 안으로 더 들어갔어도, 내 질은 그 아이를 부드럽게 내보내 줄 것이란 걸 아는 것처럼, 몸이 가진 힘_ 각자의 방식으로 생긴 이유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자연히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일정 연령대의 여성은 모두 주기적으로 피를 흘린다. 그것이 정상이다. 이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은유는 '자기 언어가 없는 자는 누구나 약자다'라고 했다. '피를 흘리면서도 피를 흘린다' 공론화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누군가와 더 많이 쉽게 자유롭게 생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반대로 한 달간 내가 공구 멤버들과 따뜻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도 과연 생리컵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절대적 환대'를 이야기했다.  사회 속에서 '사람'이 되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자리, 장소를 부여받고 사회 성원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환대가 필요하다.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이 절대적 환대다.

 

  그러니까, 누구나 '피를 더 잘 흘리도록 하는  일', 역시 절대적 환대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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