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0. '내일 계속'이라고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허허허.
변명을 하자면, 김해, 부산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몸이 너무 안 좋았다. 속이 울렁거려서 고생했다. 원래는 올라오는 기차에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내일'이라고 쓴 거였다. 진짜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속이 너무 안 좋았다. 계속 김새섬 대표님의 팟캐스트를 들고, 민트 사탕을 먹으며 눈을 감고 왔다. 명랑하고 명징한 새섬 대표님과 장강명 작가님의 이야기에 조금씩 몸과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어진 수요일도 하루 종일 잤다. 정말 15시간쯤 잔 것 같다. 그러고 나니 좀 나았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전주로 출발. 전주는 정말 이글이글했다.
이후 군산 촬영을 하고,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고 울산을 찍고 집에 왔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정말 이토록 멀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교통은 정말 서울 중심이구나 다시 한번 느낀 일정이었다.
그렇게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고 집에 오니 토요일 새벽 1시. 씻고 어쩌고 하니 2시가 넘었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도서관 행사가 있어,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갔다. 오후에는 지역 서점에 하는 북토크에 참여했다. 저녁에는 기숙사에서 온 아이 짐을 풀고, 세탁기를 돌리고 밀린 집 정리를 하다 보니 다시 새벽 2시. 허허허.
짧게 요약하자면, 늙은 나의 오만한 욕심이었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무리한 ‘내일 예고’ 따위는 하지 않겠다. 이런 무리한 스케줄에 내일은 알 수 없다.
1. 아무튼, 그래서 내가 팬심으로 인터뷰한 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일단은 그분을 만나기 전, 김해에 먼저 들렀다. 김민영 소장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오해는 마시라, 민영 소장님께 팬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소장님은 사실 다른 영상에서 메인으로 나오셔서 2주 뒤 서울에서 길게 뵐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또 굳이 찾아온 것은 어려운 인터뷰를 부탁드렸기 때문이다. 바로 <성매매> 관련이다. 전문가도 많지 않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퍼지고 있는 기술 매개 성범죄(디지털 성범죄)까지 적확하게 연결해 설명해 주실 분 또한 많지 않다. 그래서 김해에 먼저 들렀다.
2.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보르헤스의 유명한 문장이다. 지금까지 내게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의 인용으로 더 기억되어 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나는 이렇게 기억할 테다!!
"민영 선생님과 나 사이에 (응원의) 칼이 있었네. "
귀엽고, 뭉툭한 칼에 새겨진 문구와 엽서에 고이 새겨진 내용을 보며 울컥했다. 정말 감동.
민영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선생님이 <서울시 다시함께상담센터> 소장님으로 계실 때였다. 어떤 질문을 해도 척척 시원하고, 명확하게 동시에 따뜻하게 설명해 주시는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김해에서 여성청소년쉼터 소장님으로 계신다.
내 책을 알고 계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책을 드리고 싶어서 가져갔는데, 놀랍게도 이미 다 읽으시고 내용이 너무 좋아 아껴 읽었다고 하셨다. 선물과 정성 어린 엽서를 주시며 내게 다음 책을 기다린다고! ><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다 자랑하고 싶지만 이만 참겠... 허허허.
3. 인권 성평등 영상을 만들다 보면 안 좋은 사례를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자괴감이 생긴다. 세상은 나날이 이상해지고 있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나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과 함께 무력해진다. 그러나 선생님을 인터뷰하다가 알게 되었다. 삶과 앎이 일치하는 생은 이렇게 멋있구나. 세상 전부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나이 들어간다는 건 어쩌면 그런 꾸준함을 얻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한 분. 삶과 앎, 그리고 글까지 멋지게 일치하는 분을 만나러 가야 했다.
자, 그래서 그분이 진짜 누구냐면…?!
어머나, 지금 몇 시?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내일(정확히는 오늘!) 또 서울에서 녹화가 있는데...
자야 해서 이만....
(내일은 못 올 것 같고) 조만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