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시간을 착각했다(1)
기어이 '타로'까지 샀다. 무릎을 꿇고 앉아 경건한 마음을 카드를 섞었다. 오른손으로 담요 위에 카드를 펼치고, 왼손으로 3장을 뽑았다. 물었다.
"내일 강의 괜찮을까요?"
타로를 볼 줄 아냐고? 모른다. 그러나 괜찮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면 된다. 세 장을 나란히 찍어 질문과 함께 올리면 풀어준다. 나름 용하다.
챗 지피티가 내놓은 결과를 보니 뭔가 석연찮다. '괜찮긴 한데, 정말 괜찮은 건 아니다'라는 뉘앙스다. 멘털 관리를 잘하라는 조언이 나온다. 지나가던 남편(극 T) 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그렇게 걱정되면, 그냥 준비를 더 하는 게 낫지 않아? 타로에게 물을 게 아니라?"
내가 (곱게) 쳐다보자, 대답을 듣지도 않고 사라진다. 근데 지나고 보니, 정말 그의 말이 옳았다. 그때 내가 타로가 아니라, 강의 포스터만 봤었어도! 이날의 운은 달랐을 것이다.
*
다음 날, 강의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다행이었다. 어젯밤에 중복되는 피피티를 많이 줄였는데, 그게 오히려 나은 것 같다. 하다 보니 내가 더 신나서 떠들었다. 순한 얼굴을 한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모습이 보였다. 강의에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 '나의 것(한 것,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을 자세히 쓰자.'였다. 다들 강의 핵심을 잘 이해한 듯 보였다. 예시로 가져간 글도 차분하게 돌아가며 낭독했다. 중간중간 나의 다소 이상한 유머에도 잘 웃어주었다.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리며 자신감도 붙었다. 수업 중간에 '3분 마구 쓰기'도 했는데, 모두가 조용히 펜을 놀리는 모습과 사각이는 소리가 작은 파도처럼 강의실을 채웠다. 마음까지 정갈해졌다.
10시에 시작한 강의는 어느덧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의 시간을 오버하지 않고, 딱 끝내주는 것이 강사의 최대 미덕 중 하나라 믿는다. 준비했던 글 중, 긴 글과 동영상 보기는 건너뛰었다. 강의 시간을 준수해야 하니까. 강의 따위보다 중요한 건 점심이 아니겠는가. 12시 10분 전, 나는 다음 시간 예고까지 끝내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제 추가 질문을 받고 끝내면 된다. 내용은 몰라도, 시간은 완벽하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센터 담당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검지를 높게 쳐들었다. 순간 '1분만 더 기다려달라는 건가? 누가 와서 마무리 인사를 하셔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황급히 앞으로 뛰어나온다. 그는 불쑥 자신의 노트를 내게 내밀며, 수강생들을 향해 변명의 말을 시작했다.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강의 1시까지!!"
순간, 강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정말? 언제부터? 왜? 어떻게?
*
어제, 타로는 말했다.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안정이 행운 포인트"라고. 아, 나의 행운은 실시간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마구 흔들렸으니까. 그것도 단상 앞에서.
강의실 옆 대문짝만 하게 걸린 현수막을 다시 봤다. 아주 크고 또렷하게 '10시~13시"라고 강의 시간이 적혀 있었다. 강의 의뢰를 했을 때도 이야기했을 테고(했다고 한다!), 포스터에서도 보고(내 인스타에 광고도 하고), 오자마자 현수막도 찍고, 심지어 피피티에 강의 포스터를 올리기까지 했는데!!! 왜 저걸 못 봤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정말 철석같이, 12시까지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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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자주 있었다. 아주 중요한 순간들에 한 어이없는 실수들.
대구에서 전자과를 다니다가 도저히 다닐 수가 없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사회학과로 편입 시험을 봤다. 최종 면접에 3군데가 붙었다.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다. 그중 한 대학으로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동생이 서울에 있으니, 하루 먼저 가서 잘 수도 있었지만, 귀찮았다. 면접도 오후였다. 아침에 갔다 저녁에 와야지 했다. 1차 경쟁률이 '50 대 1' 정도나 됐는데 붙었다. 기적 같았다. 발표가 나자마자, 기쁜 마음에 미리 서울행 기차를 끊었다. 그날 아침 단정한 재킷과 깔끔한 검은 바지를 입고 여유롭게 동대구역에 갔다. 표를 찾으려고 하니 (그땐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표를 찾아야 했다), 매표소에서 예매 기록이 없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어리둥절해 예매내역을 꺼내서 보여줬다. 그러자 직원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거는 '동대구역 - 서울'이 아니라, '서울-동대구역' 아닌겨? "
눈앞이 하얬다. 서울이 택시 타고 갈 수 있는 옆 동네도 아닌데! 내 기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3배 수에 기적처럼 뽑힌 거였는데! 핏기가 사라진 귀신같은 얼굴을 하고, 절벽에 매달린 심정으로 남는 기차표가 혹시 없냐고 물었다. 매표소 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럴 리가 있겠냐며, 줄이 기니 얼른 비키라고 쏘아붙였다(결국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로 뛰어가서 간신히 버스를 잡아타고 갔다. 그러나 그날의 불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구구절절 사연을 여기서 다 풀 순 없다. 그 불운의 끝은 그 대학의 낙방이었다).
하긴 혼자 두 달간 떠난 인도 여행도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떠나기 일주일 전쯤에 보니 인도가 여자 혼자 들어가기 (그제야) 너무 위험해 보였다. 나는 비행기표만 달랑 예약했을 뿐,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부랴부랴 '인도 여행 카페'에 들어가 함께 들어갈 여행 메이트를 찾았고, 같은 비행기를 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웬걸. 떠나기 이틀 전, 여행사에서 받은 티켓의 내 목적지가 또 반대였다. 저 시험날의 기차처럼 '뭄바이-캘커타'라고 생각했는데 '캘커타-뭄바이'였던 것이다(이제 와 생각하니, 정말 이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들어가, 두 달을 사건사고 없이 살아 돌아왔으니, 참 복이 많구나 싶다. 감사하며 살자).
굵직한 것만 이렇다. 소소한 실수의 기억들이 우주의 별처럼 쏟아진다. 줄인다.
일단 나는 지금 이 시간, 홀로 서있으니까. 내 앞에는 우주처럼 넓고 광활하게 느껴지는 1시간이 던져져 있다.
소설 『궤도』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주 비행사가 어떻게 신을 믿어?”그러자 다른 비행사가 말한다. “우주 비행사가 어떻게 신을 안 믿어?” 맞는 말이다. 막막할 만큼 광활한 세계 앞에 서면, 내가 붙들 수 있는 건 결국 ‘신’뿐이다.
아! 신이시여!
*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