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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그래퍼 Oct 03. 2020

새 직업에 도전하게 된 이유

만 서른에 쓰는 일기 - 서른 일기

내 대학 전공인 미디어를 좋아했다.

졸업 후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소속된 MCN 업계에서 일했다. 

업계는 참 매력적이었지만 정작 내가 처음 맡았던 직무는 내 적성과 거리가 멀었다. 

적성에 맞는 직무를 찾고자 한차례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로 이직했지만 그곳에서도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 이직을 한 이후에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던 중 어느날 문득 생각의 전환을 했다.

그동안 취미로만 생각했던 사진을 직업으로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Photo by Warren Wong on Unsplash


그 길로 그해 11월에 퇴사하고, 12월부터 사진 수업을 들었다.

그 뒤 꼬박 1년 후에 '포토그래퍼'라는 이름으로 어느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서른의 마지막 날을 한달 앞두고 새 직장에 첫 출근을 했다. 막내로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어떤 생각으로 무모하게 새 직업에 도전하고 싶었는지를 적어보고자 한다. 




하나,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오랫동안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MCN 업계에서 데이터 직무로 시작해서 그 후엔 매니지먼트, 페스티벌 TF팀까지 이런저런 일을 했다. 하지만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었다. 직접 창작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나도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열어 영상 몇개를 만들어 올려본 적이 있었는데, 짧은 영상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고생스럽게 만들어서 올리는 영상의 수명은 보통 그리 길지가 않다. 시청자들은 굉장히 쉽고 빠르게 영상을 소비하고, 또 그만큼 한번 본 콘텐츠를 쉽게 잊는다. 


Photo by Sara Kurfeß on Unsplash


유튜브로 성공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쉽지 않다. 만약에 성공해서 매 콘텐츠마다 수만~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하면 참 보람이 클 것이다. 하지만 같은 노력을 들인다면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각각 짧은 시간 임팩트를 주는 것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평생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주는게 나에게는 더 보람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와 의미가
더해지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그 사람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0년 후에 보면 더 가치있어지는 콘텐츠 말이다. 




둘, 

내 재능/기술/실력을 기르고 싶었다.


신생 업계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다보니 경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을 목격할 때가 있었다. 다른 업계에서 오래 일하고 오신 분들과 커리어를 갓 시작하는 신입사원들에게 그 일이 처음 해보는 일이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전문직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전공에 상관 없이 지원할 수 있는 직무라면 공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세상은 더 빠르게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변해갈테니 나만의 재능, 기술, 실력을 기르는 게 필수라고 느껴졌다. 


Photo by Miguel Bruna on Unsplash


하필 아주 다재다능한 크리에이터들을 늘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생각이 더 절실하게 들었다. 나도 찬찬히 내 실력을 쌓아갈 수 있는 분야가 필요했다. 그때까지는 내 분야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내 '직업'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그냥 이것저것 다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 말고, 눈에 확실히 보이는 재능을 갖고 싶었다. 약간의 조바심과 조급함도 있었다.


나이 서른을 앞두고, 늦었을 수도 있지만 더 늦출 수도 없다고 생각하여 배움의 도전을 시작했다. 

남은 긴 인생을 위하여. 




셋, 

출산/육아/가족과 함께 하면서도 내 일을 지속할 가능성을 만들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사람과 가족에 큰 가치와 의미를 둔다. 지금 나와 27살 차이 나는 막내 사촌동생이 있을 정도로, 어린시절부터 늘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보며 살아왔다.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낳는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면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늘 해왔다. 나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정말 힘들게 나를 키우셨고, 나도 다른 친구들에게 부러웠던 점들이 있었다. 예를들면 하교했을 때 집에서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처럼 말이다. 나에겐 부모님과 하루에 한끼도 같이 먹지 못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 다면 꼭 내가 직접 키우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Photo by Dakota Corbin on Unsplash


내가 하고 싶은 일상화보(Lifegraphy)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화보처럼 예쁘게 담아주는 일이다. 꼭 일상화보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의 모습을 찍어주는 일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중간에 경력이 끊겨도 언제고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출산해서 육아를 막 시작할 때부터 아이가 아주 어린 시기에는 많은 일을 하지는 못하는 게 당연할 것이고 수입도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회사원의 삶보다 프리랜서나 창업가의 삶은 더 고단하고 난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은 나에게 장점으로 느껴졌다. 누가 나를 고용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그 시간에 스스로 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도전은 이제 시작


언젠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화보(Lifegraphy)를 담아주는 일을 하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사진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당연히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은 사진을 찍는 실력이니 배우는 것부터 알아봤다. 사진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얼마간 가족과 친구들을 찍으면서 연습을 했다. 카카오프로젝트100의 하루한장 사진찍기라는 프로젝트를 신청해서 100일동안 매일 다른 사진을 연출해 찍어가며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포트폴리오로 채 100일이 지나기 전에 어느 회사의 포토그래퍼로 입사할 수 있었다. 이 회사에서 일반인을 찍는 일은 하지 않는다. 모델이나 오브젝트 촬영을 한다. 아직 내가 하고 싶은 사진을 일로 하기까지는 갈길이 멀다.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회사에서 '포토그래퍼'라고 적힌 명함을 받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이제보니 이건 아직 시작도 아닌 것 같다. 공부하고 싶은 것, 해야하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만큼 개인적으로 찍어봐야하는 것도 많다. 나는 공부만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당장 돈을 벌고 생계를 이어가야한다. 사실 더 배우고 일을 시작해도 좋았을텐데, 지금의 부족한 실력으로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싶어서 매일 밤낮없이 주말도 가리지 않고 최선 이상을 다해 일하고 있다. 


회사는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걸로 성과를 내야하는 곳이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배우는 것도 있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만큼 배우려면 개인적으로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 고민이 많다. 무엇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 어디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개인적인 시간은 어떻게 낼 것인지... 


회사를 다니다보니 하고싶은 사진은 그냥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취미로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은 일단 내 사진 실력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내가 어떤 사진을 찍더라도 자신감 있게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새 직업을 향한 나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오래오래 사진을 직업으로 삼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에게 새로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직업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지난 관련 글: 사진에 꽂힌 이유, 라이프그래퍼 단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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