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순대국밥이 그리웠다
- 매일 자전거 한 시간
내가 시골 학교로 간 것도 있지만, 멍청하게도 학교에서 먼 곳에 셰어하우스를 잡는 바람에 자전거로 편도 30분을 다녔다. 첫날에 는 허벅지가 미칠 듯이 아팠으나, 일주일 지나니 괜찮아졌고 매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Halo'라고 인사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상쾌했다. 자전거로 계속 달리다 보니 건강해지 고 살도 빠졌으며 근처 강이나 강 너머까지 재미 삼아 시골길을 자전거로 마구 달렸다.
나름 대기업의 자동차 공장이 있는 잉골슈타트에서 살았지만 분 위기는 고즈넉한 시골에 은퇴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사는 듯했다. 기업 도시이다 보니 떠들썩한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젊 은 사람들이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 보니 가끔 가다가 클럽 축제 등 젊은이가 참가할 수 있는 축제가 열리면, 근처 마을에서 모든 젊은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본 평범한 하늘과 지평선은 말할 필요가 딱히 없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하늘은 사람이 사는 곳의 기본 소양이다.
- 음식
타국 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음식이다. 김치와 라면이야 이미 세계로 퍼져 나간 만큼 아시안 마켓에서 구하기 어 렵지 않으나 아무래도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은 국밥이다. 국물 요 리가 잘 없는 유럽의 특성상 대체할 만한 식품도 잘 보이지 않는다. 파리에서 거금을 주고 순대국밥을 사 먹었는데 상당히 별로 였다. 그렇다 보니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는 건 거의 습관이 되었는데 독 일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도 진라면과 신라면을 먹으면 맛이 없다. 근데 역설적으로 지금 한국에 와서 독일의 음식이 그립기 시 작한다. 한국에서 제대로 파는 곳이 잘 없기도 하다.
1) 레버 카제(Leberkäse) : 간, 치즈라는 뜻으로 생긴 건 비슷하지만 간이나 치즈와는 상관없고 맛은 매우 짠 스팸과 똑같다. 동네 마나 몇 개씩 있는 테이크 아웃 푸드코트에 가면 '케첩 or 진(머스터드)?'라고 물으며 둘 중 하나를 골라서 딱딱한 빵에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준다. 한 개에 1.5 유로밖에 안 하고 맛과 포만감이 좋아서 자주 사 먹었지만 엄청 짜서 많이 먹기는 힘들다. 마지막 출국 공항에서 팔길래 맥주와 함께 먹었다.
2) 카레 부어스트 and 감자튀김(pommes) : 카레 소시지다. 독일이 소시지로 유명한 건 다들 알겠지만 소시지에다 조금 묽은 케첩 소스와 카레 향신료를 뿌렸다. 감자튀김과 같이 먹는 맛이 일품이다. 독일은 슈퍼마켓과 함께 조그마한 푸드코트를 같이 운영하는데 같이 먹는 감자튀김이 양이 많고 더 맛있어서 더 자주 사 먹었다. 이 감자튀김의 맛을 재현하는 곳을 한국에서 아직 찾지 못했다. 갓 튀겨져 나온 두꺼운 감자튀김에 시즈닝을 묻혀주던 Edeka의 pommes가 너무 그립다.
3) 케밥(Döner) : 되너 혹은 되네르 라고 발음하는 케밥의 종류 중 하나인 되너는 밀가루 랩에다가 각종 야채를 넣고 소스로 마무리한 것이다. 보기에는 멕시코의 타코랑 비슷한데 고기도 많고 야채로 많이 들어서 영양도 좋고 양과 맛도 나쁘지 않아 하나만으로 충분한 식사가 된다. 취향에 따라 야채를 더하거나 뺄 수도 있는데 가리는 거 없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직원이 물어보면 'Alles(모두 다)'라고 외친다. 살짝 매운맛을 더한 것도 많아서 더욱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터키계 이민자가 너무 많은 독일이라 런던의 시장에서 세계 음식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독일 대표로 'Berlin Döner'를 파는 걸보고 아연실색했다.
4) 맥주(Bier) : 독일의 대표 음식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우선 마트에 가면 한쪽 벽면에 맥주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 배가 금방 부른다. 지역 별로, 동네 별로 맥주를 생산하는 공장이 너무 다양해서 뮌헨에서 파는 맥주와 베를린에서 파는 맥주의 종류 차이가 컸다. 단점은 냉장고에 들어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따로 집에 가서 냉장고에 넣어서 마셔야 한다. 바에서 파는 Raddler(맥주 + 레모네이드) , Colaweizen(콜라 + 바이젠 비어)도 중독된다. 달달함에 한잔씩 넘기다 보면 어느새 배가 부르고 취해있다.
그래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큰 캐리어 2개를 끌고 다니며 가장 먼저 먹은 것은 순대국밥에 소주 한 병이었다. 타국에서 사는 게 가장 힘든 것이 음식임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이걸 먹자마자 내 몸은 바로 한국에 적응해서 15킬로가 쪘으며, 수염과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래도 한국에서 와서는 독일의 감자튀김이 너무나 그립다. 버거킹, 맥도날드 등 그 어느 감자튀김을 먹어도 맛이 비슷하지 않다. 유럽에서 자전거를 타던 여유가 그리운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