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손에 꼽힐 만큼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1년 가까이 언어를 배웠지만, 시간이 흘러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내 언어는 늘 제자리걸음이었고, 그 답답함에 점점 화가 나곤 했다.
어느 날 수업 시간, ‘여행’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선생님이 말했다.
“라이언에어 티켓은 시기만 잘 맞추면 세금만 내고도 여행을 갈 수 있어요.”
'어떻게 항공권이 0유로일 수 있지?' 믿기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항공사 사이트를 열어보니, 정말 그 말이 맞았다.
마침 함께 일하던 매니저 언니가 더블린에서 유학 중이었다.
“언니, 나 조만간 아일랜드로 놀러 갈게.”
그렇게 나는 단돈 30유로, 가장 저렴한 티켓을 들고 런던을 거쳐 더블린으로 가는 신기한 여정을 시작했다.
여행은 파리를 거쳐 베네치아로 돌아오는 루트였다.
런던에 도착했지만, 현실감이 잘 들지 않았다.
까다로운 입국 심사에 영어도 잘 못했으니, 당황한 나는 무심결에 이탈리아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Si.” “No.”
내 대답에 심사관은 웃음을 참지 못했고, 서류를 몇 개 확인하더니, 그냥 통과시켜줬다.
도착 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관광지가 아닌 스타벅스와 KFC였다.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탈리아와는 너무 다른 풍경이었다.
샌드위치 하나, 음료 하나도 유학생에겐 큰돈이었지만, 반가움에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스타벅스에 앉아 관광객처럼 여유를 부리던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숙소는 한인 민박이었다. 한식도 있고,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친절한 주인도 있었다.
그날 일정으로 4,5곳을 추천받았지만, 나는 2,3곳만 다녔다.
관광지도 좋지만, 공원 벤치에 앉아 쉬거나, 슈퍼마켓에 들러 현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더 즐거웠다.
그땐 아직 종이 지도로 여행하던 시절이었다.
언어 장벽은 여전했고, 처음엔 길을 물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자주 길을 잃었다.
그래서 아예 지도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Where am I?”
그렇게 지도를 짚어가며 방향을 찾아갔다.
얼마나 길을 헤맸는지,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Benvenuti(환영합니다)”라는 단어가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서부터 이탈리아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한 마디도 이해 못 하던 말들이, 서서히 귀에 들어왔다.
아직 1년도 채 안 된 유학 생활이었지만, 이탈리아는 어느새 나에게 ‘집’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여행은 단순한 목적지가 아니라, ‘나’를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사람들과 소통하려 애쓰는 동안 나는 조금씩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갔다.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달았던,
내 인생 첫 유럽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