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by 마리

시간은 무심히 흘렀고, 내 비자도 만료를 향해 가고 있었다.

비자를 연장하려면 학생 비자를 다시 신청하거나 일을 해야 했다.
요리를 해본 경험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력서를 들고 피렌체의 레스토랑 삼십 군데가 넘는 곳을 돌아다녔지만 단 한 곳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 무반응은 점점 내 감정을 무디게 만들었고, 나 자신을 더욱 작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일본인 유학생 친구가 말했다.


“요리 하나 해봐. 괜찮으면 추천해 줄게.”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친구 집에 모이기로 한 날, 장을 보러 갔다. 그런데 친구가 모든 재료를 직접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불쑥 말했다.


“돼지 스테이크 한 번 해봐.”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요리였다. 당황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친구집에서 우리는 요리를 시작했다.

친구가 바질을 달라고 했다. 나는 바질을 씻어 건넸다. 그 순간 친구가 말했다.


“이걸 왜 씻어? 너 기본도 모르지?”


당황스럽고 무안했다.
한국에선 바질도, 루콜라도 씻어서 사용하는 게 당연했기에 그 말이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선 흙만 털어 바로 사용하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애호박 꽃 안에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고, 바삭하게 튀겼다.
나는 처음 보는 요리였다.

제대로 뭔가를 보여주기도 전에 나는 얼어붙었고,
잠시 후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넌, 요리학교를 가야겠할거 같아. 미안하지만, 나는 추천 못 하겠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리학교의 학비는 내 현실과 맞지 않았고, 친구들 앞에서 그런 말을 듣는 건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음식도, 사람도, 언어도, 환경도—그 무엇 하나 익숙하지 않았다.

하나둘씩 자신감을 잃어갔고,

결국 요리를 향한 나의 첫걸음은 가장 현실적인 벽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포기하는 법을 배워갔다.

keyword
이전 05화이탈리아에서의 생활 적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