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의 생활 적응기

by 마리


피렌체의 하늘은 예뻤지만, 그 도시는 나에게 익숙한 무엇도 허락하지 않았다.

피렌체엔 한식당이 없었다. 한인도 적었고, 아시안 마켓에서 라면 한 봉지를 사려면 비싼 가격에 손을 대야 했다. 매일 사 먹기엔 부담스러워졌고, 점점 먹는 것이 단순해졌다.


처음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토마토 파스타를 시켰을 때, 정말로 토마토 소스에 면만 나왔다.

한 입 먹고는 바로 내려놓았다. 닭 간을 스프레드처럼 먹는 요리, 내장 요리, 마르게리타 피자


이탈리아 요리를 잘 몰랐던 나는 매 끼니가 도전이었다.

힘들게 노력해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8킬로가 빠졌다.


그러던 중, 밀라노에 있는 친구들이 한식당 소식을 전해줬다. 정해진 요일에 한식 메뉴가 나온다고. 친구도 보고, 한식도 먹으러 밀라노로 향했다.


밀라노는 피렌체와 또 다른 도시였다. 고딕 양식의 웅장한 두오모 성당이 인상적이었고, 친구들과 한국어로 웃으며 밥을 먹으니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하지만 현실은 금세 찾아왔다.

한 친구가 길을 가다 '얼마면 되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인종차별이 꽤나 심했던 때였기에 장난으로 웃고 넘기기엔 너무 쓸쓸한 현실이었다.


사실 로마 공항만 가도 삼성 광고가 크게 붙어 있었지만, 한국을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더군다나 우리는 영어도, 이탈리아어도 능숙하지 못했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필리핀 친구들보다 더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탈리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나는 조수미나 박지성처럼 유명하고 성공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언어는 늘지 않았고, 차별을 겪으면서 점점 '왜 우리는 늘 약자의 자리에 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처음에는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지만, 점차 생존에 가까운 버티기, 절실함으로 바뀌어갔다.

그때부터 마음속 어딘가에 열등감이라는 그림자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할 또 하나의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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