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 도착한 날, 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유학원이 소개해 준 곳이 아니라, 당시 함께 일하던 오빠가 추천해준 학교였다. "한국인도 없고, 저렴하다"는 말에 별 고민 없이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했다. 아니, 어쩌면 그냥 게을렀는지도 모른다.
피렌체라는 도시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할 수 있는 인맥이 있다." "음식은 토스카나가 최고다." 그 말들만 믿고 그냥 따라갔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겠다던 인맥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작고 예쁜 도시, 피렌체에 홀로 남겨졌다.
어학원에 갔지만, 정작 나와 일본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휴가처럼 잠시 머무는 유럽 친구들이었다. 영국에서 온 20살 엠마는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정말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친구였다. 특히 그녀의 영국식 악센트는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그녀가 내게 말을 걸 때면, 꼭 내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독일에서 온 친구들은 여자아이들 키가 170cm이 대부분 넘었다. 스페인에서 왔다는 친구는 첫날인데도 선생님과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눴다.
'뭐야, 이건...?'
나는 수업을 따라가기 바빴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한국에 전자사전이 없던 시절. 뚱뚱한 이탈리아어-한국어 종이 사전을 들고 다녔고, 내 옆의 일본 친구는 전자사전으로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게 참 부러웠다.
시간이 흘러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끝까지 남아 있던 학생은 마키와 나뿐이었다.
마키는 일본에서 이탈리아 남자친구를 만나 장거리 연애 끝에 이탈리아로 왔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던 마키와는 달리, 나는 이탈리아어로만 겨우 의사소통을 했다. 사전을 뒤적이며, 문장을 만들고, 단어를 뱉어가며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