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나르시시스트 유튜브 채널인 썸머's 사이다힐링 채널의 운영자이자 '나는 왜 엄마가 힘들까?'의 저자인 썸머님과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상담을 받아본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십 년 전쯤 기독교 심리를 전공하시는 교수님의 싸이월드 클럽에 익명으로 사연을 올려서 소개받은 분께 받은 상담이었는데 4회 정도 하고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내가 먼저 그만두었다. 짧은 상담이었고 해결 받은 문제는 없었지만 나는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조금은 더 생겼고 처음으로 내가 부모보다 나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됐다. 그리고 돈을 지불하긴 했지만 누군가가 진지하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 문제를 들어주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이번에 썸머님께 받는 상담은 태어나서 받는 두 번째 상담이었다.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잘 모르는 상담사들도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나르시시스트 채널을 운영하시는 분께 직접 상담을 신청했다.
썸머님이 사전에 상담받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고 하셔서 나르시시스트로 생각되는 부모님의 구원 문제와, 둥이들 양육을 부모님께 도움받고 있는데 이 와중에 부모님이 나르시시스트인 것을 알게 되어서 향후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여쭤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직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썸머님과의 상담 10분 전에 썸머님 채널에 아스퍼거에 대한 영상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급하게 아스퍼거 영상을 한 편 보고서 상담에 임했다.
급하게 그 말씀을 드리고 혹시 아빠가 아스퍼거일 가능성도 있는지, 또 내가 아스퍼거는 아닌지도 여쭤봤다. 썸머님이 나의 가정사,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더니 아빠가 나르시시스트라기보다는 아스퍼거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십 년 전에 이미 아스퍼거 카페에 가입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아스퍼거 카페에 가입한 이유는 내가 아스퍼거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내가 아스퍼거라면 우리 아빠도 아스퍼거일 것 같고 남자 사촌동생 한 명도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진단받을 용기가 없어서 늘 온라인 카페에서만 머물기를 3~4년 정도 했다.
카페 분들은 내가 십 년 가까이 초등교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스피(아스퍼거인 사람)가 초등교사로 장기간 근무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아스피가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생각해보면 아빠도 명문대 나와서 삼십 년 가까이 대기업에 다니셨고 나의 사촌동생은 아주 내성적이긴 했지만 인 서울 대학 나와서 경찰이 되어 사이버 수사 쪽 일을 한다고 들었다. 다들 멀쩡하게 잘 살고 있으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아스퍼거 카페 방문이 점점 뜸해졌고 휴직하면서부터는 거의 발길을 끊었었다. 더군다나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것을 쉽게 인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아무 문제 아닌 일에 나만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썸머님이 우리 아빠를 아스퍼거로 보는 가장 큰이유는자녀를 트로피나 희생양 등으로 나누지 않은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에게도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역할을 나누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썸머님께 미리 나의 브런치를 공개했는데 내 브런치 글 중 아빠에 대한 글에도 그 특징이 아스퍼거일 경우에도 가능하다고 했다.
아스퍼거도 돈에 인색하고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엄연히 배우자의 돈임에도 자기가 취하는 경우도 있으며, 내가 번 돈이니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안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스피 중에도 명문대 나와서 연구소 쪽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배우자가 나르이든 아스이든 고통받는 것은 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스는 고의성이 없고 나르는 고의적으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인데 우리 엄마는 그것이 고의적인 것이 확실하다고 나에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갈수록 아빠를 나르라고 생각하게 됐다.
엄마에 대해서는 엄마는 나르시시스트적인 면이 확실히 있지만 악성은 절대 아니고 양성 쪽인 것 같으며 양성이면서 지금 접촉하는 횟수가 주 1회로 적은 편이니 연을 끊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호시탐탐 간을 보고 계시니 끊임없이 경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위의 사진은 썸머님의 신간 '아직도 사랑이라고 생각해?'라는 책에 있는 도식이다. 저 그림에서 우리 엄마의 위치는 감정 뱀파이어에서 나르시시스트로 가는 그 어디쯤인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스퍼거로 보이는지 여쭤보니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내 얘기를 막힘없이 풀어나가는 것으로 봐서 아스퍼거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했다.
긴긴 상담을 마치고 나니 얘기를 많이 했는데도 못한 얘기가 계속 떠올랐다. 이래서 상담을 몇 차례는 더 받아야 하는가 보다. 일회성 상담인 게 상당히 아쉬웠다.
나도 처음에는 아빠의 아스퍼거를 의심했었지만 두 분과 같이 육아를 하다 보니 두 분이 자아도취에 빠져계신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르시시스트 같다는 생각에 더 무게가 실렸었다. 이 얘기를 썸머님께 드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10살 때부터 20살 때까지 주말부부라 우리와 거의 같이 지내지 않으셨다.이 얘기도 상담 때 꺼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나르시시스트의 구원 문제는 통화하면서 내가 이건 신의 영역이니 사람이 답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답변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썸머님 역시도 신학자가 아닌지라 답하기 조심스러운지 나에게 목사님 한 분을 소개해주셨다. 확실한 것은 나르시시스트는 종교가 있더라도 자기반성과 회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음.. 지금 드는 생각은 혹시 한 사람이 아스퍼거도 있으면서도 나르시시스트적인 면을 같이 가질 수 있는지, 그게 한 사람 안에 공존이 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아스퍼거도 자주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는지 말이다.
어떤 사람은 나한테 왜 부모님 문제에 그렇게 매달리냐고, 부모는 부모이고 나는 나라고 독립하라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성격 안에 부모의 모습이 다 있다. 나는 어쩔 땐 아스퍼거인 것 같고 어쩔 땐 나르시시스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