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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30. 2024

성실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 - 엄마

- 엄마처럼 살지 않을 테야!!

  

  오래된 기억을 더듬고 올라가면 작은 의상실에 앉아 있는 엄마가 있다. 십 대부터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운 엄마는 하루종일 작고 침침한 의상실에 앉아 재단을 하고, 미싱을 돌리고, 바느질을 하며 밥벌이를 했다. 도수가 높은 안경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눈 아래로 내려올 때면 피곤에 지친 엄마의 눈이 도드라졌다. 여러 겹으로 진 쌍꺼풀은 안경만큼이나 무거워 보였다. 삶의 고단함과 울분이 눈에 집중되었는지 엄마의 시력은 점점 나빠졌다. 눈뿐 아니라 엄마는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다며 매일 끙끙댔다.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며 관자놀이, 목, 어깨, 팔뚝, 손목을 순서대로 주물렀다. 새끼들과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 한 번은 스트레스와 과로로  입이 돌아가기까지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엄마는


  할머니에게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못마땅한 며느리였고, 아빠에게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무식하고 둔한 여편네였다. 시어머니는 무서웠고, 남편은 야속했고, 야무지지 못한 큰딸은 걱정이었기에 엄마의 젊은 시절은 두려움과 열등감과 분노로 가득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됐다. 엄마가 무척 활발하고, 명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할머니와 아빠 사이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을 뿐 엄마는 똑똑하고, 대범하고, 유쾌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큰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볼 때면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언제 또 엄마에게 맞을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엄마는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화를 냈다. 딸이 자기처럼 무시를 당하면서 살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을 화로 표출하고는 뒤늦게 후회했다. 종아리를 맞을 때보다 엄마가 미안하다며 나를 안아줄 때가 더 힘겨웠다. 엄마에게서 떨어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무력감과 공포, 어색함과 불편함, 감당하기 버거운 엄마의 감정과 물리적인 무게까지 나를 짓눌렀다.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나약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한 방법은 하나였다. 현실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것. 지금의 부모는 진짜가 아니다, 할머니 역시 친할머니가 아니다, 나는 지구인이 아니다, 엄청난 초능력을 갖고 별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악당들의 시기와 질투로 지구에 왔다, 그 과정에서 초능력을 잃어버렸다, 나를 키우고 있는 그들이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실토할 것이다, 이제 능력을 되찾고 악의 무리를 무찌른다, 지구의 평화는 내가 이룬다 등등 만화영화와 드라마가 섞인 상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구체적인 서사를 갖추었다. 그럴수록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은 무섭거나 불편한 대상이었고, 또래들은 맞추려 할수록 어긋나는 퍼즐이었다. 유독 겁이 많고,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나는


  힘을 갖고 싶었다. 누구든 우러러볼 수 있게 만드는 능력과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을 갖고 싶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고 싶었고, 설렁설렁하는데도 능숙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하나를 배우면 그것을 깨우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열심히 하다가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전부를 포기했다. 성실한데 요령이 없어 답답하다거나, 꾀를 부리지 않는데 야무지지는 못하다거나, 얌전하고 조용한데 집중력이 짧고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긍정보다는 부정을 더 많이 흡수했던 나는 할 수 있는 일도 자신 있게 나서지 못했다. 아는 문제도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는 것도 없어졌다.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아빠에게 무시받던 엄마가 떠올랐다. 수치심과 모멸감에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열심히 사는데도 인정받지 못하고,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하는데도 묵살당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산 대가가 그런 거라면 절대로 성실할 수 없었다. 뼈 마디마디를 주무르며 얼굴을 찡그리는 엄마를 보면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열 살이 되지 않은 어느 날부터였다.


  

엄마처럼 살지 않은 건지, 엄마처럼 살 수 없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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