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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09. 2024

성실의 또 다른 의미 - 죄책감

- 성실해서 그랬던 게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엄마 손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다. 엄마는 거칠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끌려가지 않으려 버텼다. 말끝마다 '제발'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애원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왜 그러는지 물었다. 엄마는 웅변학원을 보내고 싶은데 애가 이런다고 하소연했다.


  엄마는 숫기가 없는 나를 변화시킬 해결책으로 웅변학원을 찾았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나는 죽어도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소리 높여 외칠 바에는 땅을 파고 혼자 사는 게 나았다. 처음으로 엄마의 뜻을 거부하면서 맞섰다.   


  서로가 지칠 때쯤 나는 손가락으로 집 앞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가리켰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피아노 소리를 들었지만 무심하게 흘렸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 절박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처럼 간절했다.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사정했다. 웅변학원 대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화가 깔린 걱정과 피곤과 체념을 늘어놓고는 학원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무척 조심스럽고 순박하고 상냥했다.


  그렇게 해서 피아노를 배웠다. 잘 치지 못했다. 손이 작고 손가락이 짧은 것도 이유였지만 재능이 없었다. 이해력이 부족했고, 감각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게 좋았다. 그곳에 가면 만화잡지를 볼 수 있었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피아노 한 대마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었다. 웅변학원에 가지 않았기에 뭐든 다 좋았다.


  보통 한 시간쯤 되면 선생님이 방에 들어와 피아노 치는 것을 봤다. 칭찬과 함께 부족한 부분을 얘기해 준 후 집에 가도 된다고 알려줬다. 그 뒤에 인사를 나누면 끝이었다. 그날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 세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는 그 방에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집에 갔고 학원에는 나와 선생님만 남았다. 집에 너무 가고 싶은데 방문을 열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피아노를 치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가슴을 졸였다. 왜 집에 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지, 내가 먼저 물어봐도 되는지 망설이기만 했다. 저녁 여덟 시가 지났을 때, 내가 있는 방으로 청소기를 든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지금까지 연습을 하고 있었냐며 나를 기특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꼭 안아주며 이런 말을 했다.


  "그래 OO아,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너처럼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거야."


  오랜 시간을 버티고 있는 제자에 대한 대견함과 늦은 시각이 될 때까지 아이를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이 섞인 말투였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죄책과 비애였다. 나는 성실하지 않았다. 집에 가도 되는지 물어보지 못해서 계속 남아있었다. 몇 시간 동안 피아노를 거의 치지 않은 채 고민하고 망설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엉덩이를 들썩이고, 몸을 비비 꼬면서 눈치만 봤다. 성실하다는 칭찬을 듣자 조마조마했다. 진실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났고, 진실을 밝히지 못해 불편했다. 무엇보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답답함'과 '융통성 부족'이 있을 것 같은 성실을 거부하고 싶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닌 '성실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파장이 컸다.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믿었던 어린 내게 그건 절망이었다.


  역시나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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