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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14. 2024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  

- 이젠 정말 성실하고 싶어졌다

  이런 사람이고 싶었다.


  열심히 하지 않는데 성과가 좋은 사람, 누구에게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 싫은 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는 사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성공시키는 사람, 거침없고 싹수없고 매력은 넘치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나에 대한 평가는 착함과 순함을 동반 '성실'과 '순진'이었다.


  학교에서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하는 아이, 하라는 대로 그냥 하는 아이, 뭐든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 하는 아이, 하나를 가르쳐주면 어떻게든 그것을 지키려는 아이가 나였다. 어른들은 나를 꽤 듬직하게 여겼다. 또래보다 키가 컸고, 살집이 있었고, 인상이 순해서 더 믿음직스러웠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창의력이나 요령이 부족해서 답답한 아이이기도 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둘까지는 모르는 아이, 시키는 일만 하는 아이, 어떤 영역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결과가 신통치 않은 아이, 조용한데 산만해서 예상치 못한 사고를 치는 아이가 나였다. 그때마다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혹은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착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지표에는 매 년 새로운 단어와 문장으로 같은 내용반복됐다. 그건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1학기 종강 시간에 그 누구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던 여름 방학 과제를 유일하게 했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을 때에는 꼼꼼하게 정리해서 다음 사람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었다. 수당 없이 야근을 하기 일쑤였고, 사비를 써서 이것저것 시도하기도 했다. 약지 못해 답답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최고라는 극찬도 받았다.


  좋았다.    


  칭찬보다는 걱정과 비난을 받으며 자랐기에 인정을 받을 때마다 좋았다. 그렇다고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내가 좋았던 건 혼나지 않아서였다. 질책을 받지 않아서, 무시를 당하지 않아서, 남들에게 창피하지 않아서 좋았다. '좋았다'보다는 '안심했다'가 더 정확했다. 무사히 잘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계속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당연히 자주 지쳤고, 불안과 초조를 숨기지 못했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겨우겨우 힘을 냈기에 비난을 받으면 견딜 수 없었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공룡 아가리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에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 산물이 아직도 살아남아 나를 물어뜯고 있다고 생각하자 목덜미가 축축해졌다. 그들이 말하는 '순진'과 '성실'은 이용하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공룡에게 내어주면서 감사하고 미안하다고 굽신거렸다.


  타인을 향했던 성실이 과부하를 일으키자 무기력이 시작되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에도 흥미를 잃었다. 그런 중에도 욕망은 커졌다. 이루지 못한 꿈이 간절했고, 갖지 못한 것이 탐났다. 앞서 가는 이들을 볼 때면 질투와 죄책감이 엉켰다. 그럴 때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부모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깨달았다. 원망만 있던 자리에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생겼다. 부모가 고생한 덕분에 내가 자랐다.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긴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하기로 했다.


  부모를 이해하면서 나를 돌아봤다. 나는 결코 성실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성실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성실하게 보였던 건 겁이 많아서였다. 거절하고 거부했을 때 일어날 일을 왜곡하고 부풀리면서 두려움을 키웠다. 상대가 무서워 끙끙대면서 했고, 갈등이 생길까 봐 손해를 감수했다. 다른 일이 많아 더는 할 수 없다거나,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는 등의 말을 하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했다.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과제에 방학 내내 매달렸던 건 재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질타를 받을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새로 입사한 곳에서 무능력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선배가 하는 말을 전부 메모하면서 매뉴얼을 만들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늦게까지 일을 했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사비는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욕먹지 않으려 기를 썼던 건 성실이 아니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좌절감과 무기력으로 매번 주저앉고, 끈질기게 매달릴 힘이 없는 내게 성실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열심히 하는 척했을 뿐, 제대로 몰입한 적이 없었다. 순간순간은 진심이었지만 대체로 위장이었다.    


  그토록 거부했던 '성실'이라는 단어가 심장에 박혔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인정하는 순간, 타고난 재능이 있다 해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더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정성을 쏟고 싶어졌다. 잘 하든 못 하든 성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에서 행복하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나를 기특하게 여겼으면 했다.


  이런 욕구가 생기자 무기력은 더 강해졌다. '안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못 하는 것'이었음을 깨닫자 그나마 있던 자신감까지 잃었다. 처음으로 나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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