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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21. 2024

성실한 뻘짓

- 멈추기 힘든 고통스러운 즐거움

  하여간 허튼짓만큼은 성실하게 했다. 분명 그 작업도 목적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수단에만 집착하다가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칠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는 일이다. 집중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가 중요했. 우선 출입문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에 신경 쓰다 보면 산만해지기 쉬웠다. 그러니 되도록 출입문은 멀리 있는 게 좋았다. 책상이 커서 사람이 많이 앉을 수 있는 곳도 피했다. 사람들과 모여 있으면 불편하기도 했고, 운이 나쁘면 어수선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과 한 책상에 앉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책상과 책상의 간격이 넓거나, 독립적인 공간이 있으면 무조건 그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을 보면 딴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창가와 거리를 두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을 드나들기에 편해야 다. 그 조건에 딱 맞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는 전날 밤부터 서둘렀다. 휴대폰에 알람을 몇 개씩 맞췄고,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머릿속으로 정했고, 가방에 필요한 물품을 미리 챙겼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최대한 서둘렀다. 시간은 충분했지만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도서관 문이 열리기 전부터 대기해야 했다. 줄 맨 앞에 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닫혀있는 도서관 문 앞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게 목적이 돼버렸다. 원래 목표는 집중력을 높여서 효율적으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리 하나 차지한 후에는 딴짓을 하기 일쑤였다.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앉으려 했는지는 잊은 채, 자리 하나 차지했다고 만족했다. 인생은 결국 자리싸움이었다.  


  도서관 자리 잡기는 카페 자리 잡기로 이어졌다. 커피와 음식의 맛은 상관없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음악이 중요했다. 한국어 가사가 있는 노래는 절대로 안 됐다.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 가사는 그나마 나았지만 그래도 집중력을 흩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빠른 비트의 신나는 음악이 나와도 안 됐고, 음산하고 우울한 노래도 금지였다. 결론은 편안하고 가벼운 연주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어야 했다. 와이파이는 기본이고, 노트북 전원을 꽂을 수 있어야 했다. 커피 하나 주문하고 하루종일 있는 진상 손님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샌드위치, 샐러드, 케이크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어야 했다. 일하는 분들과 같은 층에 있기 민망하니 단층보다는 2층 이상의 카페여야 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지러웠고, 너무 없으면 부담스러우니까 적당히 있어야 했다. 이런 환경이 갖춰진 카페에서도 자리는 중요했다. 테이블 간격은 되도록 넓어야 했고, 화장실은 가기 편해야 했다. 창가에 앉으면 딴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으니 창가와 떨어져 있으면서 답답하지 않은 자리여야 했다. 이런 조건의 카페는 대부분 대형 프랜차이즈였다. 오랜 시간 있다 보니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도쯤은 투자할 수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대기업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평상시에는 이용하지 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몇 가지 불만을 감수하고 서둘러 오픈 시간에 맞춰 카페에 갔지만 역시 목적을 잊은 채 돈만 쓰고 나온 적이 많았다.  

  

  책을 읽을 때에도 그렇다. 처음에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시작했다. 러시아 작가가 쓴 소설을 읽는데 이름부터 너무 헷갈렸다. 이름도 긴 데다가 별칭도 여러 개여서 누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새로운 인물이 나올 때마다 정리했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건을 간추렸다. 와닿는 문장은 바로 필사하거나 자판을 두드렸다. 그게 습관이 돼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비문학 작품은 더 심하다.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은 무조건 기록해야 한다. 아는 내용이어도 표현을 새롭고 멋지게 했으니 그것도 기록한다. 이 모든 게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속도는 더디고, 부분에 집착하다가 전체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힘들게 정리한 내용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으면서, 책에 있는 지식이나 감동을 제대로 흡수하지도 못하면서, 이제는 편하게 책을 읽겠다고 다짐하면서, 계속 이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물건을 구입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가격을 비교하고, 성능을 조사했는데 막상 제품을 구입한 후에는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돈과 시간을 들여 너무나 정성껏 쓰레기를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몇 달 전, 나는 새로운 뻘짓을 추가했다. 돈이 들지는 않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중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 재료가 넘치고 넘치는데도 여전히 그것을 모으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느라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은 뒷전이다. 사실 그 일도 쓸데없는 짓이긴 하다. 이걸 하려는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끊을 수 . 나의 길티 플레저는 나를 참 성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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