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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18. 2024

못 믿겠지만 열심히 했어요

- 애쓰고 억울하지 말자

  운동을 못한다. 못해도 너무 못한다. 근육이 없어 힘이 없기도 하지만 몸보다 머리가 더 문제다. 아무리 알려줘도 신체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자세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뇌에서 그 분야를 담당하는 영역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다.


  그래서 체육시간이 있는 날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배가 아팠다. 피구, 발야구 등 팀을 짜서 경기를 할 때면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마냥 죄스러웠다. 안 그래도 미안한데 나를 답답하게 보는 이들 때문에 서럽기까지 했다. 달리기, 던지기, 매달리기 등 개인전은 내 능력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형편없이 나오는 결과 때문에 매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를 보면서 안도하거나 야유하는 친구들이 야속했고, 왜 그것밖에 안 되느냐는 교사의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당연히 1년에 한 번씩 있는 운동회는 도망치고 싶은 날이었다. 특히 달리기는 최악이었다. 줄다리기, 박 터뜨리기 등 단체경기는 묻어갈 수 있었다. 계주, 장기자랑 등은 선발된 아이들만 하면 됐다. 그런데 달리기는 모두가 참가해야 하는 개인전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한 번도 누군가를 앞서 본 적이 없었다. 꼴등을 하더라도 근소한 차이로 결승점에 들어오면 좋은데 앞에 있는 아이와 간격은 늘 길었다. 나를 지루하게 지켜보는 눈빛을 느끼며 뛴다는 건 한없이 맥 빠지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거리가 벌어질 때마다 나는 둔하고 초라해졌다.


  그날은 진짜 굳게 결심했다. 더는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다. 꼴등을 하더라도 앞에 있는 친구와 차이가 나지 않으려 했다. 처음으로 잘 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까지 했다. 눈을 부릅뜨고 달리라는 조언부터 호흡과 다리 간격 등에 대한 정보까지 머릿속에 새겼다. 혼자서 연습도 했다. 한 명 정도는 제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그런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뛴다고 뛰었는데 간격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조급하면서 따분한 모습이었다. 나 역시 불안하면서 나른했다. 내 자세가 우습지는 않은지 걱정이었다. 몇 번이나 멈추고 싶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기 위해 속도를 냈는데 제 자리 뛰기를 하는 것처럼 길은 좁혀지지 않았다.


  "넌 왜 뛰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냐."

  

  꼴찌로 들어와 속상하고 민망한데 할머니가 보탰다. 남들은 다 악착같이 달리는데 나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여유롭게 뛰었단다. 아닌데,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내게는 두리번거릴 여유가 없었다. 덜 창피하기 위해 있는 힘껏 뛰었기에 한눈팔 새가 없었다. 할머니가 꼴찌인 나를 놀리기 위해 없는 사실을 지어냈다고 생각했다.

 

  사귀던 사람과 볼링장을 갔을 때도 그랬다. 아마 세 번째로 가는 볼링장이었을 거다. 처음에 갔을 때, 나는 공과 함께 레인에서 미끄러졌다. 회사 사람들과 회식을 마친 뒤 간 곳이었다. 편한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이 더 많은 자리였다. 아픈 것보다 창피했다. 초라한 점수보다 내가 공과 함께 구른 게 화제였다. 두 번째는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갔다. 인원이 많았기에 응원만 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애인과 함께였다. 나는 그가 너무 좋았고, 많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볼링장에 가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못했다. 볼링장 입구에서부터 배가 아팠지만 소리 내 웃었다. 내게 맞는 공을 고를 때에는 흥겹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공을 제대로 굴리지 못하는 나를 위해 열심히 설명했다. 직접 시범을 보였고, 내 자세를 바로 잡아주려 했다. 처음에는 친절했다. 그러다 눈썹을 꿈틀거렸고,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어느 순간, 그는 나를 혼내고 있었다. 무안했지만 그래도 웃었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핀을 넘어뜨릴 때마다 크게 박수를 쳤고, 내가 던진 공이 레인을 벗어날 때면 음악소리에 맞어깨를 움직였다.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해도 나는 재미있게 잘하고 있어요, 그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못 한다고 엄살을 부리거나, 못 하니까 그만 하자는 철없는 여자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못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거기에 즐기기까지 한다면 그가 나를 좋게 봐주리라 생각했다.


  "야,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게임이 더 남았는데 그가 인상을 쓰며 볼링슈즈를 벗었다. 그는 내가 볼링을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하기 싫어서 대충대충 하니까 실력이 늘지 않는 거라고도 했다. 협박처럼 다시는 나와 볼링을 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잊고 있었던 운동회 날이 떠올랐다. 앞사람과 간격을 줄이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나는 그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달리기를 잘하는 방법대로 눈을 부릅뜨고 다리를 힘껏 움직였는데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나는 사방을 둘러보며 여유를 부리다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한 답답이었다. 그를 위해 과장된 몸짓을 하며 내내 웃었지만 그에게 나는 억지춘향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내가 귀담아듣지 않았단다. 매번 성의 없이 공을 던지고는 딴짓을 했단다. 아니에요,라는 말은 못 했다. 내가 당신에게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데 왜 그것을 몰라주냐는 문장도 삼켰다. 내 노력은 늘 우습고 하찮구나, 하는 생각에 진짜 감추고 싶었던 눈물을 흘렸다.


  고생하고 있는데 남들이 몰라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 날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야속했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헤어진 그를 원망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내가 정말 열심히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할머니 말대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는지도 모른다. 나를 제치고 달려가는 아이들을 의식했을 테고, 내 뒤에 누구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고개를 돌렸을 수도 있다. 앞서가는 아이들과 거리를 가늠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답답하게 보고 있지 않을까, 살폈는지도 모른다. 볼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레인에서 넘어져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기에 볼링을 치는 게 무서웠다. 볼링공이 자꾸만 옆으로 빠질 때면 위축됐다. 그가 자세를 설명할 때에는 어차피 들어도 모른다고 체념했었다. 그가 내쉬는 한숨소리를 너무 크게 의식했고, 그의 표정 하나하나에 가슴을 졸였다. 나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니까 표정과 행동으로 진심이 드러났을 것이다. 과장스러운 웃음과 박수는 무척 어색했을 테고, 몸짓은 엄청 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할머니와 그가 말한 것처럼 여유를 부리며 대충대충 하지는 않았다. 못 믿겠지만 열심히 했다. 못 하고 싶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대충대충'은 있을 수 없었다. 하기 싫었던 인정한다. 계속 팔뚝에 소름이 돋고, 배가 아팠다. 능력으로는 없는 영역인 데다가 경쟁까지 해야 했으니 과정도, 결과도 좋을 리가 없었다. 


  그때 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럴 수 없었다면 꼴찌를 하든, 점수를 내지 못하든, 자세가 우습든 상관없이 즐겨야 했다. 그게 어렵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말아야 했다. 적어도 나는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 말아야 했다. 다 같이 손을 잡고 수다를 떨면서 달리기를 했다면, 점수와 자세에 연연하지 않고 볼링장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공을 굴렸다면 나도 달리기와 볼링을 좋아할 있었을까.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기 싫거나, 내 능력 밖의 일일 확률이 높다. 혹은 방식이 나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는 없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나를 힘들게 하는 일까지 끌어안지 않아야 한다. 거부해도 괜찮고, 거절해도 괜찮다. 괜한 욕심 때문에, 상대방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가 만든 틀에 갇혀 힘을 낭비하지는 말자. 어떻게든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남들이 하는 방식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생하는 내가 억울하지 않도록, 정말 필요하고 좋아하는 일에 정성을 쏟을 수 있도록 오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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