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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19. 2024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 하고 싶은 건 없는데 되고 싶은 건 있어요

  끝내 꺼내지 못했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만 반복했다. 몇 번이나 소리 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상담사는 차분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방금 꿈이 있다고 하셨는데 하고 싶은 게 뭔가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왜 그 답을 하기 어려운지 얘기했다.


  "창피해서 못하겠어요. 그 꿈이 액세서리가 된 것 같아 너무 찔려요."


  상담사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이번에도 나는 입술만 달싹였다. 손에 힘을 줘 깍지를 꼈다가, 풀었다가, 손가락 하나하나를 꼬집 듯이 주물렀다. 상담사의 눈을 피해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손이 보였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뜨끔했다.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상념이 지나갔다. 입술을 꾹 다물고 눈에 힘을 줬다. 또 울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하지 않으니까요. 치열하게 노력하지도 않고, 악착같이 매달리지도 않으면서 꿈이라고 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요. 그래서 말하기가 힘들어요."


  나에게 꿈은 곧 다가올 현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꿈이 나를 덜 초라하게 해주는 장식이 되었다. 별 의미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위안과 안도를 주었다. 동시에 죄책감도 얹었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도 없으면서 놓지도 못하는 어리석음까지 보탰다. 몇 명 친한 사람들에게만 소심하게 고백하고 술에 취해 엉엉 울기도 했다. 꿈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이루어지기는 하는 거냐고 투정을 부렸다. 돈을 벌어야 한다며 손을 놓았으면서 방패가 필요할 때에는 그것을 이용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꿈만 꾸고 있었기에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상담사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내가 갖고 있는 죄책감에 대해 질문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삭제하고, 새롭게 단어를 엮어서 내놓으면 상담사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또 물었다. 왼손을 주무르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르느라 눈동자가 흔들렸다.  


  되고 싶은 건 있는데 하고 싶은 건 없어요. 이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대가 없이 이득을 취하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을 숨기고 싶었다. 힘든 단계를 생략하고 이상적인 모습만 바라는 뻔뻔함을 감춰야 했다. 아니다. 사실은  꿈을 위해 노력하싶었다.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그것에 빠져들고 싶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다가 굳은 몸을 움직이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열심히 하는 내가 아니라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내가 그려졌다. 잘 되지 않을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면서 불안해할 나를 또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자신도 없었다. 아이들은 넘어지면서 큰다는데 나는 넘어지면 폭삭 늙어버릴 것만 같았다. 무기력한 주제에 욕심이 그득한 내가 징그러워서 또 눈물을 흘렸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는 개념있다.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가 발견한 이론인데 경제학자 로버트 머튼이 이 용어를 만들어 확대하고 활용했다. 자기 충족적 예언을 아주 짧게 설명하면 '믿는 대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이다. 인간의 행동은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영향을 받기에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모습이 될 확률이 높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적인 모습이 될 확률이 높단다. 상담을 받는 내내 이 이론이 나를 잡아당겼다. 내가 나를 부정해서 지금 이렇게 사는 거라고, 내 꿈을 드러내지 못해서 이루어진 게 없다고, 하고 싶은 게 뭔지 밝히면 뭐라도 할 거라고, 이젠 믿어도 된다고 침묵 속에서 나를 다독였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다.  

 

  상담이 끝난 후에도 나는 그 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끝내 꺼내지 못한 돌덩어리가 나를 더 납작하게 눌렀다. 거뜬히 빼낼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상태가 싫으면서 익숙했다. 익숙해서 무서웠다.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 돌을 치우는 대신 무게를 줄이자. 꿈을 바꿔야겠다.


  다음에 누군가가 꿈이 있냐고 물으면 꿈은 없지만 목표가 있다고 말하려 한다. 그동안 내게 꿈은 허상이었다. 꿈만 꾸었기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젠 깨어날 시간이다. 목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완고하고 무거워서 고민이지만 몇 번 하다 보면 편해질 것이다. 안 되면 다른 단어를 찾든가, 제대로 된 꿈을 고르면 된다.   


  그래서 목표가 무엇인지 물으신다면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대답하겠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래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게 지금 내가 가야 할 첫 번째 단계이다. 망설이지 않고 목표를 말하기 위해 나의 미완을 마주 보고 있다. 그것을 채워나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나에게 제일 먼저 말할 것이다.


  나는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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