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 떨림 Oct 25. 2024

다시 쓰는 성실의 의미

- 극한 직업 속 달인이 아니어도

  좀 놀랐다. 예상과 달라서 몇 번을 확인했다. 악착같은, 치열한, 끈질긴, 모진 등 거칠고 강한 의미의 단어가 있을 거라 짐작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미래를 위해 견디며 쉬지 않고 나아가는' 정도의 내용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뜻풀이는 한없이 맑고 가벼웠다.


  '정성스럽고 참됨'


  성실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말랑한 단어로 이루어진 일곱 글자가 전부였다. 극한 상황에서도 바라는 일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게 성실이라 오해했던 나는 이 짧은 문장에 허탈해졌다.


  EBS 프로그램 <극한 직업>과 SBS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 정도는 돼야 성실하다고 생각했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해도 맡은 일을 계속해나가거나, 어느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야 성실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가족을 위해 고단함을 참고, 고통스러워도 멈추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끝에 경지에 올라야 그 단어를 붙일 수 있다고 믿었다.


  정성스럽고 참됨.


  한없이 가볍고 말랑거려 시시하기까지 했던 문장을 몇 번 읽으니 느낌이 달라졌다. 심장 한 구석이 뻐근해지면서 코끝이 시큰거렸다. 뜬금없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오려 해서 당황스러웠다. 뭐지, 싶은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공간을 서성였다. 몇 걸음 걷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꽤 오래 반복했다. 발등을 쳐다보며 걷다가 현기증이 느껴지면 고개를 들었다. 한 곳만 보면서 제자리를 맴도느라 어지러웠구나. 난데없이 이 말이 튀어나왔다.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졌다. 복잡했던 문제 중 하나가 간단해진 기분이었다.  


  한동안 나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만의 신념과 철학을 갖고 힘든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 성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이 어마어마하고 엄청난 일을 할 수 없다고 미리 짐작하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그 엄청난 일을 이루고 싶었다. 현실과 욕망 사이의 격차가 커질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졌다. 제대로 성실의 뜻을 알게 됐을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가볍고 시시하다고 착각했던 일곱 글자가 점점 웅장해지면서 심장이 아렸다. '정성'과 '참됨'에 내포된 의미가 너무 거대하고 대단해서 이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정성스럽고 참됨'에는 '하루종일, 24시간 내내, 매일매일'이라는 조건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반드시, 꼭, 무조건, 어떻게든'이라는 요구도 없었다. '모든 것'에 그래야 한다는 요건도 없었다. 좋은 결과를 만들라는 강요도 없었다. 그저 담백하고 산뜻하게 과정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담고 있었다. 묵직했지만 버겁지는 않았다. 한결 편안하게 성실을 대할 수 있게 됐다. 사전의 내용을 토대로 내게 맞는 성실을 찾아도 될 것 같았다.


  그동안 높은 경지만 바라보며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절망했다. 오해하고 착각하고 과장하면서 나와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일을 무시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좌절하고 희망했던 수많은 오늘을 하찮게 여겼다.


  매일 아침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하는 것도, 오는 사람이 없어도 책방을 지키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과 소주를 마시는 것도,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책 속 문장에 울컥하는 것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 서두르는 것도, 가끔씩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것도, 올바르지 않은 정치에 분노하는 것도 성실이었다.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등등 너무 당연해서 사소하다고 여겼던 일상적인 일들도 성실이었다. 하기 싫다고 투덜댈 때마다, 귀찮다며 뭉그적거릴 때마다,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나아가지 못할 때마다, 열등감과 부담감에 짓눌려 작아질 때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만 정성스럽고 참될 때마다 반성하고 아파했던 것도 성실이었다. 그러면서 해야 할 일은 했으니 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며칠 일에 집중했더니 다시 힘이 빠졌다. 일어나야 한다면서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매는 내게 겨우 그거 해놓고 이럴 거냐고 윽박을 지르려다 피식 웃었다. 나는 이럴 수 있다고, '겨우 그것'이 오늘을 만드는 중요한 일이라고, 성실을 기본으로 갖고 있으니 필요하면 어떻게든 할 거라고 중얼거렸다. 이 혼잣말이 사실인지, 위안인지,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그냥 두기로 했다. 이게 지금의 나니까 여기에서 시작하면 된다. 


  나의 이야기가 자유롭고 명랑하게 확장되고 변형되기를 바라며 몸을 일으켰다. 이젠 당신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