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혼자 공부하지 마라

함께 공부하면 러닝 캐피탈이 만들어진다

by 임희걸

공부는 깨달음의 기쁨 때문에 하는 거라고요?


퇴계 이황은 주자 성리학을 심화, 발전시켜 조선을 학문적으로 가장 융성한 시대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 분입니다. 누가 내린 평가인지 모르겠지만 이 한 줄로만 보아도 <대학자>라는 호칭이 딱 맞는 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 퇴계 선생이니 당연히 학문의 자세는 관직이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배우는 그 자체를 즐겼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퇴계의 일기를 보면 아무리 대학자라 해도 시험 합격에 연연하지 않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과거 시험 합격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깨달음이 먼저지 까짓 과거야 때가 되면 다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4살에는 3번이나 연달아 낙방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내심 나는 크게 상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날은 갑자기 문 밖에서 “이 서방! 이 서방!”하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름 뒤에 붙일 호칭이 없다고 누가 감히 나를 ‘이 서방’이라 부르는가! 달려 나가 보니 손님이 이 씨 성의 늙은 종을 부르는 소리였다. 결국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고작 과거에 합격해 관직을 얻는 일에 이렇게 연연하다니, 사람의 마음이 이리 간사하단 말인가!" - 퇴계 선생의 일기 중에서 -


퇴계는 34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갑니다. 이 일기를 쓰고도 10년 동안이나 낙방을 계속했다는 말입니다. 그동안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배움 자체로 큰 기쁨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학자도 이렇게 시험 합격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합격만을 위해 공부한 선비들은 더 했을 겁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과거라는 제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혼자 공부와 과거 제도


과거 제도는 수나라 문제 7년(서기 587년)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무려 1,400년 동안이나 지속된 제도입니다. 고대는 신분제 사회였는데요, 이런 사회에서 과거라는 관리 발탁 제도는 어마어마한 혁신에 해당했습니다. 과거는 주로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과거를 통한 인재 발굴 시스템 덕택에 신분이 높은 가문이 관직을 독차지하는 현상이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이 제도는 합리적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지금은 동양의 많은 나라들이 서양의 제도와 문화를 따라가기 바쁩니다. 하지만 근대 이전까지 서양은 강한 신분제 사회를 유지한 반면 동양은 합리적인 사회 제도를 많이 실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서양 지식인들은 동양의 사회 제도에 감탄하고 부러워했습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서양의 신분제 사회의 대안으로 중국의 과거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는 관료 지망생들에게 높은 학식과 인문학적인 자기 수양을 요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과거제를 채택한 나라들은 모두 똑같이 높은 교육열을 보였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교육을 중요시하는 문화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공부는 신분 상승이라는 단일의 목표를 따르다 보니 교육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평생 시험에만 얽매인 결과, 수많은 실패자가 양산되었습니다. 게다가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 학문 분야는 발전이 더디게 되는 현상까지 나타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 제도의 가장 큰 폐해는 경쟁적인 시험 체계 속에서 혼자 묵묵히 공부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나라


그럼 과거제가 없는 나라의 공부 방법은 어떨까요? 프랑스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풍부한 지식과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졌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스스로를 가장 지적인 나라라고 자부합니다. 이런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할까요? 프랑스의 공부는 생각의 교류를 통해 사고를 발전시키데 우선순위를 둡니다. 교류하는 공부를 중요시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해 나갑니다.


프랑스의 대입 시험은 <바칼로니아>라고 불리는 논술입니다. 약 3일간 논술 시험을 보는데, 철학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철학적 주제를 이렇게 긴 시간 논술하려면 평소 토론을 통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야만 합니다. 프랑스 학생들은 바칼로니아를 준비하기 위해 여행과 같은 다양한 체험을 하고, 여러 주제를 토론하며 생각의 힘을 기릅니다.


교육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또 있습니다. 바로 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입니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도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학습하도록 가르칩니다. 다만 프랑스 교육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협력의 공부라면 유태인의 교육은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도전의 공부에 해당합니다.


KBS의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다큐와 동명의 책을 보면,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교실 풍경이 사뭇 다릅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서로 의견을 피력하면서 수업을 이어갈 때에도 자기 순서가 되기를 기다려서 말합니다. 교사는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타인의 말을 끊지 않도록 지도합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에서는 스승이나 어른에게도 도전적으로 반박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칩니다. 의견을 주장하고 열띤 논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세부적인 스타일은 각자 다르지만 서구의 나라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즐거운 공부


저는 어느 쪽이 더 맞느냐보다는 어떤 공부가 더 즐거울까를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혼자 하는 공부가 시험 성과 측면에서는 나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지식을 암기하는 수준이라면 굳이 소통을 하고 토론을 하기보다 책을 들고 골방에 들어가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미 사회에 나온 상태이고 시험 패스를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면 좀 더 즐거운 방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숭례문학당과 독서 커뮤니티에서 4년간 인문학 분야 독서 토론에 참여하였습니다. 2주에 한 번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견해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때로는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하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참여하는 십 여 명 중 누구도 이 활동을 공부라고는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활동, 또는 나의 성장을 위해서 하는 활동 정도로 여겼습니다. 굳이 공부라고 생각지 않으니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거나 활동의 성과가 무엇인가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수긍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는 자본주의가 핵심 이념입니다. 자본주의는 성과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성과를 꼭 측정해야 하고 성과가 없으면 어떤 활동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원을 성과가 나지 않을 분야에 투자하는 행동은 바보짓으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도 성과주의에 물들었습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공부를 한다니, 공부를 어렵고 힘들게만 생각하는 사람은 뭐하러 그런 짓을 하나 싶겠죠. 사람들에게 독서 토론을 하러 다닌다고 얘기하면 종종 그걸 하면 뭐가 되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직까지 그들의 머릿속에는 공부란 꼭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냥 공부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브런치에 있는 수많은 작가분들도 꼭 책을 많이 팔고, 유명해지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글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는 사람, 글을 통해 소통하는 사람, 글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려는 사람 등... 사회적인 성취 외에도 많은 목적이 있겠죠. 반드시 성과만 쫓기보다는 좀 즐거운 공부를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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