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어떻게 500권이나 되는 책을 썼을까?

커뮤니티 프로젝트로 러닝 캐피탈을 축적하라

by 임희걸

한자가 만들어지고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


다산 정약용은 일생동안 모두 503권의 책을 썼습니다. 어떤 학자는 다산 정약용을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한 해에 27권, 한 달에는 2권 이상의 책을 완성해야만 가능한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다산의 책 저술 시기를 추정해 보면 한꺼번에 7~8가지 이상의 책을 동시에 작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다산 선생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쓸 수 있었을까요?


제자들과 함께 책을 쓰는 것이 다작의 비결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의 단체 작업이었습니다. 책의 주제와 방향이 정해지면 정보수집, 정보 분류, 글쓰기 등을 각각 나누어 맡겼습니다. 그런데 함께 책을 쓰면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책의 통일성이 떨어지고 쓰는 사람별로 논점이 바뀝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 팀 과제가 꽤 많았습니다. 팀 과제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바로 전체적인 관점의 통일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통일성을 가진 책 쓰기를 위해 <초서>라는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초서(抄書)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책을 베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냥 책 전체를 베끼는 필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필사는 단순히 책을 옮겨 적는 것이지만 초서는 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옮겨 써서 새로운 책 하나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초서를 할 때는 먼저 책 만들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책의 논지가 분명하도록 주제문과 목차를 정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여러 책에서 관련 내용을 뽑아 참고자료 카드를 만듭니다. 이어서 카드를 분류하고 정리하며 자료를 논리적으로 배치합니다. 이렇게 모아둔 카드 자료를 활용해 책을 쓰는 방법이 바로 초서입니다.


다산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초서를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초서에 쓰고, 분류하고, 편집하는 두뇌를 성장시키는 활동이 다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초서는 책의 정보를 가지고 뇌를 트레이닝하는데 특화된 방법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뇌과학에 기반한 학습법 '초서'를 통해 배움을 얻었습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하기


스승인 다산 선생과 함께 한 작업 모두가 하나의 공부였습니다. 단순히 책을 읽기만 했던 다른 학당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학습 성과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정보를 찾는 법,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법, 그 정보를 연결하여 새로운 지식으로 만들어내는 법까지 배웠습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실행하면서 배웠으니 타 학당의 학생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노하우를 체득한 것입니다.


다산 선생은 초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자신이 맡았습니다. 바로 책의 목표와 전체적인 지침을 정하는 역할입니다. 사실 이렇게 플랜을 세우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회사에서도 기획 역량이나 설계 역량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핵심 역량에 해당합니다. 다산의 제자들은 다산의 모습을 보면서 책 기획 역량을 배웠습니다. 다산 선생의 편지에는 초서법을 설명한 부분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개략적인 설명이라서 이 단서만으로 실제로 초서를 통해 책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산의 제자들은 운이 좋았습니다. 스승이 책의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함께 일하며 어깨너머로 고수를 보면서 배우는 방법이 ‘모델링’입니다. 다산은 모델링을 통해 제자를 길러 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산 자신도 선배를 모델링하면서 초서법을 배웠다는 점입니다. 다산은 젊은 시절 온양의 봉곡사에서 열흘 동안 책 쓰기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이삼환이라는 선비가 책 쓰기의 총괄 작업을 맡았습니다. 이삼환의 지시로 10 사람이 함께 <가례질서>라는 책 쓰기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다산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서 독서법을 배우고 자신이 것으로 만듭니다.


나중에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가까스로 복권이 되어 서울로 되돌아 갑니다. 그의 제자들은 다산이 돌아간 후에도 학문을 계속하며 많은 책을 썼습니다. 제자들에게 다산의 초서법 노하우가 이어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산이 책의 목표를 세우고 지침을 수립하는 과정을 모델링했습니다. 아마 말로만 설명했다면 했다면 제자들이 책 기획이라는 핵심 업무를 실행하는 단계까지 배우지는 못했을 겁니다.


어떻게 성공하는 법을 배울까요? 우리 앞에는 먼저 이 길을 걸어간 롤모델이 있습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배우지 않고 혼자서 공부한다면 쉬운 길이 있는데도 일부러 돌아가는 셈입니다. 단순히 전문 지식을 습득하려 하기 전에 내 업의 롤모델이 있는지 찾아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모델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잘러 선배일 수도 있고 업계에 이름난 전문가일 수도 있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 속의 인물이나 드라마 속 가상의 인물도 훌륭한 모델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그 모습을 본받아 성장하는 방법도 있다는 점을 깨닫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


- 짐 론, 미국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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