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지식에 특화된 모델링 학습법이란 무엇인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책 쓰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식 경영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다산이 함께 책 쓰기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공부법을 <초서>라고 합니다. 초서법은 먼저 책의 방향과 목차를 정하고 거기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는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고수인 스승이 가장 핵심적인 기획과 설계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의 세부적인 작업은 제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산의 제자들은 2가지 방법으로 배움을 얻었습니다. 먼저는 스승이 책 전체의 방향을 잡고 설계를 하는 모습을 보며 지식을 통합, 연결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다음으로는 같이 작업에 참여하며 자신이 맡은 파트의 관련 서적을 읽고 자료 카드를 정리하며 지식을 찾고 분류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초서를 통해 스승과 제자의 지식이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성공하는 법을 배울까요? 우리 앞에는 먼저 이 길을 걸어간 롤모델이 있습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배우지 않고 혼자서 공부한다면 쉬운 길이 있는데도 일부러 돌아가는 셈입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선현들의 명언입니다만 분명 지름길은 있습니다. 바로 롤모델의 노하우를 모방하며 배우는 <모델링> 학습법입니다.
고수들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특정한 기술에서 경지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기술을 발휘하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이 머릿속 무의식 영역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는 작동 원리를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골프 선수가 공을 칠 때, 숙달된 저격수가 목표물을 맞힐 때 머릿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일일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면 오히려 결과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는 편이 좋습니다. 이렇게 무의식에 스킬이 저장되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과정을 ‘암묵적인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병아리 감별사도 암묵적인 학습을 통해 익힌 기술을 활용합니다. 병아리 감별사는 아무나 쉽게 될 수 없는 고소득 전문직입니다. 감별사는 갓 부화한 병아리를 보고 암컷인지 수컷인지 정확히 가려냅니다. 숙달된 전문가는 1시간에 800~1,000마리나 되는 병아리의 성별을 가려낼 정도로 속도가 빠릅니다. 그러면서도 정확도는 99%에 달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병아리를 구분해 낼까요? 사실 본인들도 말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린 병아리에게는 일반인이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을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감별사들은 무의식적으로 병아리를 골라낼 수 있습니다.
미국은 군인을 대상으로 심리학 연구를 많이 진행하였습니다. 군인은 극한의 상황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인간 심리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발견된 바에 의하면 어떤 병사들은 적군이 어디에 폭탄을 숨겨 놓았는지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이들은 폭탄이 숨겨져 있다는 작은 실마리를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리지 않는 바위, 수상해 보이는 쓰레기 더미, 낯선 위치에 놓여있는 가방 등에서 폭탄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설명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그런 단서를 찾아내는지 명쾌하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에드워드 티에니 중사는 어떤 자동차가 폭탄을 숨기고 있는지 금방 알아챈 덕분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갑자기 몸이 서늘해지고 느낌이 왔습니다. 위험해지는 느낌.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네요.”
부대에서는 티에니 중사의 폭탄 찾기 능력을 다른 병사들에게 교육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누구나 쉽게 폭탄을 찾는 눈을 갖게 된다면 군인들이 안전하게 임무 수행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표준화된 교육을 개발하려던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암묵적 학습은 행동의 많은 부분을 지배합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학습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뿐입니다. 야구를 하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타자가 친 공이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아직까지 공의 낙하지점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날아오는 공을 잡아낼 만큼 강력한 능력을 가진 컴퓨터는 없습니다. 컴퓨터가 뜬 공의 방향과 속도, 지면에서의 높이를 계산해서 낙하지점을 찾아내려면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7~8살 정도만 돼도 암묵적인 학습을 통해 어렵지 않게 뜬 공을 잡아냅니다. 암묵적 학습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수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닌 자신의 전문 분야의 스킬을 갈고닦습니다. 전문 분야의 암묵적 학습이 축적되면 고수만이 할 수 있는 탁월성이 드러납니다. 이런 고수의 탁월함을 미리 정해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배우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일 뿐입니다.
병아리 감별사나 아프가니스탄의 병사도 암묵적 학습을 과정을 통해 놀라운 판단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로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단순히 말로 설명하는 교육법만으로는 고수의 능력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롤모델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그의 어깨너머로 지켜볼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모델링은 ‘한 명 또는 여러 사람의 모델을 관찰한 결과로 발생한 행동, 인지, 정서의 변화를 지칭하는 일반적 용어’입니다. 모델링은 앨버트 반두라의 사회인지학습의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같은 반 친구가 수학 공부를 할 때 풀이 과정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친구를 곰곰이 살펴보니 논리적인 수학의 문제 해결 절차를 말로 정리하여 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그 친구가 어떻게 수학에서 늘 100점을 맞는지 알 듯합니다. 아이는 이 공부법을 따라 했고, 자기도 좋은 성적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접 모방은 모델링의 한 가지 형태에 해당합니다.
모델링에는 크게 4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변에 있는 모델의 말과 행동을 직접 보고 배우는 직접 모델링입니다. 앞 서 이야기한 사례처럼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시험공부 방법을 보고 배웠다면 직접 모델링입니다.
두 번째는 상징적 모델링이 있습니다. 책, 영화, TV에 등장하는 롤모델을 보고 따라 하는 방법인데요. 10대 아이들은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옷차림이나 말투는 따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아이들의 행동은 상징적 모델링입니다.
세 번째는 종합적 모델링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관찰한 행동의 부분 부분을 종합하여 자신의 행동을 발전시키는 방법입니다. 아주 어린아이가 형이 높은 책장에서 책을 꺼내기 위해 의자를 사용하는 방법을 봅니다. 또 엄마가 찬장에 과자를 넣어놓고 하나씩 꺼내는 모습을 봅니다. 아이는 이 2가지를 결합하여 의자를 사용해 찬장에서 과자를 꺼내 먹는 행동을 합니다. 이 행동은 종합적 모델링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지적 모델링은 모델의 생각과 행동을 언어적 설명과 함께 보여 주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방법입니다. 선생님이 물리 문제를 풀 때, 푸는 과정 중간중간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문제를 푸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이 순간 선생님은 자기도 모르게 인지적 모델링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과정은 지식 자체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기술을 상황별로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반두라에 따르면 학습자는 자신의 행동 결과뿐 아니라 타인의 행동 결과를 보기만 해도 충분히 배움이 가능합니다. 간접 경험도 직접 경험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방을 통해 단시간에 고수가 시행착오 과정을 따라잡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