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캐피탈 VS 협업
오랫동안 어울리며 서로를 잘 알게 되면 신뢰가 생깁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장기간 팀워크를 다져 온 동료가 있는 일터, 생각만 해도 흐뭇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창의성이 강조되다 보니 오래된 관계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사이에서는 창의적인 시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많은 이들이 비판하죠. 더욱이 관계를 강조하는 우리네 ‘조직 우선 문화’의 부작용 때문에 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아졌습니다. 과연 독립적으로 일하기가 최선의 방법일까요?
항공 운항 전문가들은 열차나 배 사고보다 비행기 사고의 발생 확률이 훨씬 적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통계를 들이대도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비행기는 다른 사고에 비해 사망률이 높고 피해 규모가 치명적이니까요. 그런데 미국 정부의 항공 사고 조사에 따르면 사고의 73%는 처음으로 팀을 이룬 승무원들에 의해 일어난다고 합니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실패의 결과가 참담한 일일수록 깊은 신뢰가 쌓인 팀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함께 성장하는 과정은 오랫동안 쌓인 <관계> 속에 비밀이 있습니다. 협업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짧은 기간 동안 성과를 내려다보니 깊은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지 않나 우려스럽습니다. 지금의 협업은 빠른 목표 달성을 위해 이미 필요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전제로 합니다. 이 과정에 <배움>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회사는 신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할 사람을 찾으면서 “부족한 부분은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서 해결하면 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몸값을 조금 더 주더라도 경험을 먼저 해 본 사람을 추가 채용해야겠다고만 말합니다. 여기에는 ‘전문가라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이미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가르쳐서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복잡다단한 문제가 즐비한 세상에서 내 문제에 딱 맞는 해결방안을 가진 전문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얼마 전 교육 프로그램의 홍보를 위해 교육과 마케팅 분야를 모두 경험한 이중 전문가를 찾는 회사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채용 공고를 반복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보통의 전문가는 자기 분야와 유사한 영역에 한해서 전문성을 키웁니다. 그래야 실패 확률이 적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마케팅이라는 전혀 다른 2개 분야의 학위를 따는 사람은 드뭅니다. 결국 그 회사는 원하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를 찾다가 시간만 버리고 일의 진척이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회사 내부의 인력을 키워서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교육을 업으로 하는 회사이다 보니 내부에 교육 전문가가 많았습니다. 이들이 마케팅에 관한 노하우를 조금만 보충했으면 교육 프로그램 홍보도 훌륭히 해 냈을지 모릅니다. 성과 창출에 마음이 급한 윗분들은 전문가 채용에만 열을 올리기 일쑤입니다. 경험자를 사 오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많습니다.
김영모 명장은 50년 가까이 제과 제빵 분야에서 일해 온 빵 만들기의 고수입니다. 그는 서울 강남, 수원 등 9곳에 김영모 과자점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연 매출이 150억 원에 이르러 중견 기업 레벨이 되었습니다. 베이커리로는 상당한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기술을 인정하는 제도인 기능한국인 제과 1호와 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영모 과자점은 다채로운 빵 만들기에 강점을 가진 조직입니다. 그곳의 제빵사들은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그 소재를 빵으로 구현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그 결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빵들이 계절마다 새로 태어납니다. 요리 중에서 최고의 요리는 제철 재료로 만든 신선한 요리라고 합니다. 요리사의 실력이 제 아무리 좋아도 좋은 재료가 우선입니다. 제철 재료로 만든 신선한 요리와 같은 빵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참으로 멋집니다. 그러다 보니 개성적인 맛을 찾는 고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김영모 명장은 새로운 빵을 계속해서 개발할 수 있는 비결이 ‘조리법 공개’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김영모 과자점의 모든 조리법은 매년 책자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경쟁 업체는 물론 일반인도 이 레시피 책자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개발해 놓고 경쟁자가 그들만의 레시피를 베끼라고 알려주는 셈입니다. 이렇게 조리법을 낱낱이 공개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계속해서 더욱 노력하도록 부추기기 위해서입니다.
김영모 과자점에는 25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속 직원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고민하며 일해야 같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일한 직원들을 우대합니다. 오래 일한 직원들이 늘어날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 고민으로 떠올랐습니다. 스스로 개발한 빵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은 좋지만 우리 빵이 최고라는 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리법 책이 공개되면 금방 경쟁 업체가 비슷한 빵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김영모 명장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스스로 만든 조리법을 뛰어넘어야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계속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조리법 개발에 힘쓸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중국 한나라의 한신 장군은 강을 등지는 ‘배수진’을 쳐서 병사들이 물러나면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병사들은 도망갈 데가 없다 보니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수진의 성공으로 한나라는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김영모 명장은 조리법 공개를 통해 한신 장군처럼 ‘배수진’을 쳤습니다.
한편으로는 CEO 자신부터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다른 요리사를 롤모델로 삼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김영모 명장은 정기적으로 유럽이나 일본을 여행하면서 다른 나라의 빵집을 찾습니다. 특히 새로운 소재를 빵에 적용하는 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합니다. 일본은 벚꽃이 많이 피는 봄에는 벚꽃을 이용한 빵을 만듭니다. 가급적 꽃잎이 그대로 보이도록 당 절임을 해서 빵이나 화과자에 씁니다. 김영모 과자점에서도 일본의 꽃 절임을 모방해서 ‘벚꽃 몽블랑’이라는 꽃을 이용한 빵을 내놓았습니다. 예쁘고 맛도 좋다고 고객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렇게 갖가지 재료를 쓰는 법, 자연에서 빵 만들기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아직까지 외국의 파티시에들이 앞서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배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새로운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많은 회사가 전문가를 채용하거나 전문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협업을 위해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관계는 조직의 학습 측면에서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프로젝트에서 성과가 났다 해도 ‘그 과정’은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같이 사라지고 맙니다. 분명 비슷한 유형의 프로젝트인데도 어떤 경우는 성공하고 다른 경우는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프로젝트 내용을 문서로 남기려는 회사도 많습니다. 하지만 문서로는 시행착오를 겪었던 노하우를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김영모 과자점은 직원들이 오랜 관계 속에서도 나태해지지 않고 계속 공부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이미 학습한 지식을 내려놓게 유도하였습니다. 빵 만드는 조리법은 사라졌지만 함께 연구한 직원들은 그대로입니다. 그 직원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조리법이 아닌 새로운 조리법을 만들어 내는 노하우가 들어 있습니다. 경쟁자가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그들의 진짜 노하우는 여기에 있습니다.
<교학상장>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스승과 제자가 모두 성장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라는 ‘예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조직 내에서 고수가 후배에게 팁을 주고, 다시 후배가 성장하여 선배의 성장을 부추기는 모습, 정말 멋지지 않은가요? 앞으로는 협업이 더욱 늘어 일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전문가를 사 와서 단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각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에 딱 맞는 전문가도 없을뿐더러, 그 전문가가 직원들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조금 시간이 더 들겠지만 문제에 유기적으로 대처하는 멋진 직원을 만들면 최고의 슈퍼 파워를 가진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