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여행 1

- 프라하성/ 카를교

by Swan

프라하 여행 첫 날은 비엔나에서 넘어오느라 힘들어서 숙소에서 테레비전으로 체코 다큐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이틀째 호텔에 투어를 요청했다. (보통 지리를 모르는 첫 날에는 시내 투어버스를 탑승하는데 프라하는 도시가 워낙 작아서인지 투어버스가 없는 것 같았다.) 승합차를 세계 각국의 승객들과 타고 프라하시내를 둘러보았다. 관광가이드는 키 큰 남자로 큰 우산을 들고 다녔다. 관광객들에게 잘 따라오라는 의미로 들고다니는 것 같았다.

< 시내에서 본 프라하 전경>


건물에 한 남자가 매달려 있다. 남자는 프로이드라고 한다. 무엇일까? 애매하게 매달려 있는 저 남자. 아슬아슬 버티는 현대인을 풍자한것일까? 데이비드 체르니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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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둘러보고 프라하성에 오르다. 프라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이라고 한다. 웅장하다. 현재 프라하의 인기로 이미지가 많이 노출되서 신비감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지만 처음 볼 때는 신기했다. 프라하성은 성비타 성당외 미술관, 대통령 집무관으로 사용되는 건축물, 황금 소로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장료를 내지 않고 성비타성당 일부를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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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비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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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비타성 내부 : 스테인드 글라스와 은빛 으로 장식된 성당은 아름다왔다.


프랑스 베르사이유궁, 오스트리아 쉘부른 궁전이 정제된 우아함이 있다면 프라하성은 중세 시대의 신비로움을 간직하여 과거의 향취가 묻어나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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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내려오는 길, 멀리 에펠탑을 닮은 페테로진 전망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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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성 관람후 걸어 내려왔다. 캉파섬 인근 이렇게 운하같은것도 보인다. 프라하의 베니스라 불리우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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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이 서는 곳> 이 곳에서 22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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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본 프라하 전경>




프라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카를교, 수많은 조각상이 서있고 그림같은 프라하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 눈만 돌려도 조각상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은게 단점이라면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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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토록 많은 조각상이 필요했을까? 매스미디어가 없는 시기 일반인에게 삶은 현대와 비교할때 더욱 궁핌하고 고통스러웠을 때 매스미디어 대신 신과 동상이 현실의 고통을 잊는 대안제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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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의 마무리는 시계탑에서, 매 정각마다 시계탑에서 인형이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별거없다는 후기들... 그러나 이 때를 기다리는 인파들로 광장은 웅성거린다..

프라하 성 (Pražský hrad)

프라하 성은 천 년 이상 체코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9세기에 체코 통치자의 거주지로 건설되어 최근에는 대통령 집무실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라하 성은 왕궁, 행정 시설, 성당, 요새, 정원과 황금 소로와 같이 그림같은 명소를 갖춘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프라하 관광청)


성 비투스 대성당(체코어: Katedrála svatého Víta)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대주교좌로 프라하 성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뛰어난 전범으로 꼽히는, 체코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성당이다. 1989년성 비투스, 성 바츨라프, 성 아달베르트 대성당(체코어: Katedrála svatého Víta, Václava a Vojtěcha)으로 개명하였다. 이 대성당에는 여러 명의 체코 왕과 여러 성자들, 영주, 귀족,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기도 하다. (위키백과)


카렐교(체코어: Karlův most)는 체코 프라하 블타바 강 위에 다리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인 카를 4세의 통치 아래 1357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402년에 완성되었다. 1841년까지 프라하 올드타운과 그 주변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또한 서유럽 동유럽의 교역 루트로 프라하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돌다리(Kamenný most)라고 했지만 1870년부터 카렐교로 불리게 되었다. 1841년까지는 프라하에서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였기 때문에, 프라하 성과 구시가지(스타레메스토)를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러한 점때문에 프라하는 서유럽동유럽을 잇는 주요 교역루트로 발전할 수 있었다.

카를교는 길이 621m, 너비 약 10m로 16개의 아치로 다리 상판이 지탱되고 있다. 3개의 교탑이 카를교를 지키고 있는데, 이 중 2개는 말라스트라나에 있고, 1개는 스타레메스토(구시가지)에 있다. 구시가지 교탑은 고딕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리 위의 상판은 30개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원래 1700년대에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레플리카로 다 교체되었다.

카를교는 얀 네포무츠키(네포무크의 요한) 신부가 대주교와 대립하던 보헤미아의 왕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처형 당한 장소로서 관광객들이 그가 떨어진 장소에 있는 그의 조각상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정사와 달리, 바츨라프 4세가 아내인 요안나를 의심하였는데 왕비가 얀 네포무츠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 뒤,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불러 아내의 부정을 물었으나, 신부가 입을 다물고,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왕의 곁에 있는 개에게만 말하겠다고 한 사건으로 강에 던져졌으나, 한 달 뒤에 부패하지 않은 채로 떠올랐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프라하 곳곳에 이에 관한 그림과 글이 있고, 관광객들은 카를교 위의 강아지(배우자가 자신에게 충성하길 바라는 소원), 요안나 왕비(프라하로 돌아오겠다는 소원), 네포무츠키 신부 등을 만지며 소원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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