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은 이번 비엔나 여행에서 인상 깊은 곳이었다. 물론 빈에 있는 미술관중 감동을 주지 않는 곳은 없다. 레오폴드 뮤지엄에 없는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그림을 벨베데레 궁전에서 볼 수 있다. 이 곳을 방문하는 주된 이유는 아마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 이외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이 많다. 그리고 궁 자체가 아주 아름답다. 이 날 날씨가 너무 환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보기 힘든 쨍쟁한 하늘, 바람은 많이 불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날씨, 소장 작품이 환상적으로 어울린 극한 체험이라고나 할까..
벨베데레 상궁
- 벨베데레 상궁에서 바라본 정원과 하궁-
클림트 <키스>
이 작품 주위는 항상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서 사진을 찍기도 쉽지 않다. 그림 속의 남자는 클림트, 여자는 평생의 연인이었던 에밀리라고 추정된다. 에밀리는 그 당시 의류 디자이너로 직업적 성취를 위해 많은 희생이 따르는 결혼에 회의적이었고 클림트의 청혼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평생의 연인과의 결혼 실패로 인한 좌절, 현실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사랑의 성취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황금빛은 비잔틴 모자이크에 영향을 받았고 물결치는 듯한 무늬에 대해서는 생물학에 관심에 많았다는 클림트의 취향에 따라 세포라는 설, 혹은 이집트 벽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클림트, 살아있는 듯한 여인의 초상, 모델과 클림트와 연인관계였을 가능성이 유추된다.
클림트 프리챠 리들리 부인의 초상 : 클림트 회화의 장식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작품
벨베데레에서 만난 에곤 쉴레는 자못 달라진 느낌을 준다.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본 쉴레의 자화상이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거침없는 유아독존의 젊은 청년의 모습이라면 벨베데레의 쉴레의 그림은 보다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전쟁과 질병, 세상의 풍상과 속수무책으로 시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이해한 성년이 보여주는 애잔함이 느껴진다..
<에곤 쉴레, portrait of the artist's wife>
에곤 쉴레 < the family>
쉴레에게는 윌리(Wally)라는 모델이자 뮤즈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르주아 출신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월리를 버린다. 쉴레는 결혼 후에도 월리에게 휴가기간 만나자는 일종의 계약을 제안했다고 하나 월리는 당차게 거절한다. 월리는 간호사가 되어 전쟁에 나갔다 병에 감염돼 사망한다. 이 그림을 그린 후 얼마 안돼 쉴레의 부인은 스페니쉬 인풀르엔자에 감염되어 사망하고, 곧 쉴레도 병이 전염되어 사망한다.
- 궁 내부-
* 클림트와 에곤 실레 그림 이외에도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의 궁전으로서 빈 남동쪽에 있는 바로크 양식 궁전이다.
왕가는 1697년 부지를 사들이고 사보이의 왕자 오이겐(Eugen von Savoyen)이 거대한 공원을 우선 조성하였다. 벨베데레 궁전은 도시 근교에서 왕족이 보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1714년 건축이 시작되어 일단 틀을 닦고 정원도 만들게 되었다. 그 주변으로는 오랑제리와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건축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가 맡았으며 그는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의 바로크 양식을 극대화한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와 함께 베네치아 출신의 조각가 죠반니 스타네티가 함께 하였다. 하부 벨베데레 궁전의 건설은 1716년 완공되었으며 천정은 마르니코 알트몬테라는 화가가 완성하였다.
서쪽에는 정교한 그로테스크 양식을 가미한 공간이 나타나며 침소로 쓰인 곳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회화 전시실도 있는데 그곳의 장칙은 도메니코 파로디(Domenico Parodi)가 맡았다. 내부의 또 다른 화강암으로 된 방은 1720년부터 지아코모 델 포라는 사람이 천정 색채 작업을 하였다. 동쪽으로는 전체 응접실과 식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1720-1723년에 걸쳐 상부 벨베데레가 완공되었는데 원래는 중앙 정원으로 하여금 궁전의 축을 잡고자 하려는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궁전은 1752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팔렸고 그녀가 최초로 이곳을 벨베데레라 명하였다. 합스부르크 가 하에 궁전은 더욱더 명성을 다지게 되었다. 1775년 이후 벨베데레 궁전은 황실 회화 전시장으로 쓰였으며 하부 벨베데레 궁전으로 다른 궁전의 그림을 이전해오기도 하였다. 가장 마지막에 머물었던 사람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갤러리 박물관이 벨베데레 궁전으로 정해졌다. 2차 대전 중 많은 피해를 입어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현재 외부 개보수 작업에 착수하고 있으며 주로 정원을 다시 꾸미는 일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8년에 완공을 했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