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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바다 Aug 17. 2021

고양이는 지갑으로 키웁디다

6. #병원비가냥아치 #당근지옥




#병원비가 냥아치라네


 사람들은 보통 반려동물을 키울 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데려오는 과정에서의 준비가 아니라 데려오고 나서의 마음 준비가 말이다. 고백하건대 나 또한 하얀이를 데려올 때 기본적인 정보만을 습득한 채 무작정 데려왔다. 일단은 '잡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데려오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많은 변화를 요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반려 동물을 키우기 시작하면 내 공간이 변하는 것은 기본이고, 나의 생활패턴과 내 금전적인 지출에까지도 큰 변화가 생긴다.


 공간과 생활패턴의 변화는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 하지만 금전적인 지출은 때로는 나의 능력을 벗어날 수도 있으므로 가장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요소이다.

 솔직히 반려동물을 데리고 올 때 경제적인 부분을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그래 봤자 얼마나 들겠어? 안일한 생각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진짜 많이 든다. 왜냐하면 병원비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은 보험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 병원비에 0 하나를 더 붙이는 정도랄까? 나 같은 경우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그전에 일을 하면서 모아둔 돈이 있었고, 직장을 다니는 동생이 비용의 반을 부담해준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하얀이를 금전적인 고려 없이 쉽게 데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데려오고 나서 실제로 나가는 병원비 액수와 그 외의 지출에 동생까지도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원래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거야?


 '원래'라는 것은 모르겠지만 하얀이의 경우 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검사가 다 필요했으므로 많이 나온 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성화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새끼 고양이를 입양한다고 해도 결국엔 하얀이와 비슷한 금액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중성화 비용도 30만 원 안팎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길냥이는 30% 할인해준다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첫 번째로 받은 청구서가 276,010원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게 30% 할인된 금액이었다.


 길냥이 입양 비용을 계산해주었던 유튜브에서 제시한 금액과는 확연히 다른 금액에 잠시 당황했지만 하얀이의 귀에 가득한 진드기를 보고 있자니 그래도 하루빨리 납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이는 그동안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얼굴을 비볐는데 그게 귀가 간지러워서 그랬던 건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그날 내가 받은 청구서 내역은 다음과 같다.


하얀이의 첫 번째 병원비


 이건 단순히 '첫 번째'에 불과했다. 하얀이의 경우 생각보다 진드기 물림이 심각해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고, 밖에 오래 있었다 보니 물 부족과 탈수 증상으로 신장 수치도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방접종도 3차까지 한꺼번에 다 맞아야 했다.


 즉 나의 카드 값은 계속 불어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수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하얀이는 신장 수치가 높은 것 외엔 밖에 오랜 있었는데도 꽤나 건강하다고 했다. 외관 관리도 잘 되어 있고 (그루밍을 열심히 했다는 것은 그만큼 고양이가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한다.) 성격도 엄청 온순하다고. 하얀이의 나이는 3살 혹은 보수적으로 4살로 추정되었다.


 나는 빠른 노후 준비(?)를 위해 하얀이의 나이를 4살로 잡고 생일은 구조 날인 병원 첫 방문일, 1월 20일로 정했다.


 진찰을 끝내고 잠시 밖에서 기다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어이없었다. 생활비의 반을 차지하는 비용을 동물병원에서 내고서도 아깝지가 않다니. 다음 달부터는 외식을 줄여야겠구나, 또 어디서 줄이지, 멍하니 생각할 뿐이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활비를 재정비하는 동안 내 옆에서 하얀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살짝쿵 이동장 안을 들여다보니 나를 째려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만' 째려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일까? 친구랑 같이 잡았는데 자꾸 나만 야려서(?) 억울한 마음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기분 탓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안 쳐다보고 진짜로 나만 째려보는 것 맞다고.


 그러자 빼쭉빼쭉 웃음이 났다. 왜냐고?


너... 나를 알아보는 거구나? 똑똑한데?


 아마 이때부터 나의 팔불출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병원에 여섯 번을 더 갔다. 첫 번째 종합점검 외에도 지속적인 귀 진드기 치료와 스케일링, 신장 수치 체크, 필요한 예방 접종을 받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은 갑자기 부어오른 눈 때문에 24시간 병원을 갔다 온 적도 있었다. 고양이는 면역력이 떨어지면 바로 눈으로 그 증상이 나타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한밤중에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총 일곱 번의 병원비를 모두 다 합친 금액이 과연 얼마였을까?


하얀이 초기 병원비


 첫 번째 병원비가 276,010원 + 두 번째가 51,700원 + 세 번째 384,600원 + 네 번째 55,000원 + 다섯 번째 36,500원 + 여섯 번째 35,000원 + 일곱 번째 60,000원 합해서 무려 898,810원이었다!


 이쯤 되니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있었다.


나보다 니 몸값이 더 금이구나?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 사료비와 용품 값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당근하다 죽겠네


 집사의 카드값이 불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반려묘 용품 때문이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집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하우스, 화장실, 캣타워, 스크래쳐, 장난감, 쿠션, 매트, 계단 등등... 솔직히 사료비는 주인님 입맛에 맞는 것만 잘 찾으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지만 병원비만큼 무시무시한 것이 바로 이 '용품'들을 사는 비용이다.


 나 같은 경우, 하우스에 5만 원을 썼고 화장실에 3만 원을 썼다. 고양이는 화장실만 사면 끝인 게 아니라 매번 갈아줄 모래도 주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데 그게 한 봉지에 만 원이다. 캣타워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에서 작은 게 12만 원이고, 종이 스크래쳐는 만 원짜리, 2만 원짜리, 3만 원짜리 세 개를 방 곳곳에 두었다. 장난감과 쿠션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여러 개를 사고... 앗, 그러고 보니 고양이는 사료만 먹는 것이 아니네? 간식에는 동결건조와 츄르와 캔이 있고, 사료에는 건식과 습식이 있는데 습식 위주의 식단을 짜려면 캔 하나가 얼마더라... 계산해보다가 그만두었다.


 사료와 용품 값도 분명히 병원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하얀이를 데려오고 나서 초기에 산 물품들이다. 왼쪽부터 스크래처, 터널, 빗, 화장실, 쿠션, 하우스, 캣타워,  간식, 캔, 장난감, 구강용품이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솔직히 반려동물 용품은 너무 비싸다. 여태까지 지켜본 바, 이상하게도 같은 상품이라도 '반려'가 붙는 순간에 값이 배가 된다. (실제로 나는 인간용일 때는 4만 원대였던 선반이 캣타워용으로 입소문이 나자 8만 원 가까이로 가격이 올라갔던 케이스를 알고 있다.) 게다가 마음먹고 카드를 긁어도 고양이님께서 쓰지 않으시면 모두 예쁜 쓰레기가 된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말이다.


 자신이 구매한 물건을 주인님께서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뜯어보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아마 모든 집사들의 가장 큰 난관이 아닐까 한다. 뜯은 상품은 반품이 되지 않고, 그게 무서워서 안 사주자니 미안하고, 그렇다고 매번 모험을 무릅쓸 수는 없고... 그래서 나는 주인님의 취향이 서러운 집사들이 모이는 곳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름하야 당근마켓!


 당근마켓에는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집사들이 많았다. 중고로 올라온 상품들 중에는 새 것이 꽤 많았는데, 모두 집주인님께서 사용을 거부하셔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싸게 내놓는다는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었다. (주인들은 결코 자신의 취향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결국 집사가 발품을 팔 수밖에...) 나도 처음에는 하얀이의 취향을 몰라서 사고, 팔고, 다시 사고, 다시 팔고를 반복했다. 덕분에 당근 하느라 죽는 줄 알았고 말이다.


 그러나 또 덕분에, 따뜻한 순간들도 많았다.


 당근마켓은 앱 특성상 '근처'에 있는 이웃들과 거래를 하게 된다. 나는 그 과정에서 동네 사람들은 물론 가끔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 분까지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구경하기만 했던 새로운 단지를 체험(?)하게 될 기회를 얻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식으로 동네를 탐험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일회성의 만남들이었지만, 때때로 그 만남은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기도 했으니까. (나는 이동장을 빌려주신 A 집사님과 베프가 되었다.)


 또한 이런 일도 있었다.


 하얀이를 데려오기 전에 나는 같은 앱을 통해 이동장을 산다는 글을 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참 뒤에 그 글에 하얀이가 무사히 구조되었냐는 메시지가 왔다. 궁금하니 그 후기를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구조 후의 사진을 올려서 하얀의 소식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그랬더니 축하의 댓글이 여러 개가 달렸다.


하얀이 구조 성공 글에 달린 댓글들


 생각보다 많은 댓글이 달려서 놀라웠는데, 그중 어떤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오셨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분은 세 마리의 길냥이를 기르고 계셨다. 그런데 최근에 대량으로 산 츄르를 애들이 먹지 않아 난감해하시던 중 하얀이를 떠올리셨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얀이가 츄르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시면서 그분은 내가 쓴 글을 읽고 나서 하얀이가 계속 기억에 남아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새하얀 애가 꼬질꼬질해질 때까지 밖에서 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짠하셨다고. 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해 바로 약속을 잡았다.


 만나기로 한 날, 그분은 파란 차를 타고 파란 츄르를 들고 오셨다.


 어쩌면 좋아하시는 색이 파란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나는 혼자서 몰래 반가워했다. (나 또한 파란 계열의 색을 좋아한다.) 그분은 생각보다 많은 츄르를 들고 오셨는데, 두 봉지 중 한 봉지는 아예 뜯지도 않은 새 상품이었다.


세 마리의 길냥이를 키우시는 집사님께서 주신 파란색 츄르


 나는 그 묵직한 선물을 받고 나서 파란색이 참 기분 좋은 색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하얀이에게 츄르를 뜯어주었다. 다행히도 주신 분의 마음을 알았는지 하얀이는 새로운 간식을 허겁지겁 냠냠냠 츄르르촵촵 맛있게 먹어주었다. 당연히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찍어서 집사님께 공유를 드렸고 말이다.


하얀이가 츄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집사님께 바로 사진을 보내드렸다. '냥이 키우는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다'는 말에 나는 이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 후로 나는 당근에서 거래를 할 때마다 츄르나 습식캔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 번은 습식캔 한 박스를 거래한 적이 있었는데,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나는 그분이 여섯 마리의 길냥이를 키우시면서 바깥의 아이들도 케어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마리씩 데려오다가 결국 여섯 마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집으로 데려올 수가 없어서 밖에서 돌봐주신다고 하셨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나는 가지고 있던 장난감과 간식을 몽땅 쇼핑백에 넣어 그분에게 깜짝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서 삼십 분 동안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나는 집사님께 여쭤보았다.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다 케어하세요?"

집사님은 털털하게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내가 데려왔으니 끝까지 책임져야죠."

"현실적으로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 텐데요."

"그래서 열심히 돈 벌고 있어요, 얘네 먹이려고. 당근도 열심히 하고."

"저는 하얀이만으로도 벅찬데 정말 대단하세요."

"아니야, 서로 좋은 거죠. 얘네가 제 낙이에요. 맨날 웃어."


  말씀하시면서 집사님은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집안을 완전히 장악한 여섯 마리 고양이들의 평온함이 드러누운 자세에서부터 나타나 있었다. 배를 다 까놓고 양다리를 벌린 채 사람처럼 누워있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하얀이도 맨날 인간인 척하면서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보너스 사진+ 인간인 척 누워있는 황하얀님




 이렇듯, 반려동물을 키울 때는 단순히 마음의 준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까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플 때 치료받지 못하고, 필요한 환경을 제공받지 못해도 동물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한 생명을 데리고 온다는 것은 그 생명의 모든 경우의 수를 책임진다는 뜻과 같다. 심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말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는 곧바로 반려동물들의 삶의 질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절대로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무게를 멋대로 저울질하는 순간 흔들리는 것은 분명 한 개인의 양심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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