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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바다 Aug 19. 2021

밥만 주면 되는 게 아니라고요?

7. #까탈스런룸메 #세입자신세 #빼박육아




 가족 말고 누군가와 함께 산 경험은 나에게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 1년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첫 룸메이트로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으니, 꽤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내가 멋대로 데려온 입장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엄청났다. 하얀이가 밖에서의 생활보다 안에서의 생활을 더 만족스럽게 느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하니 눈치만 엄청 보게 되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해야 하는 것, 좋다는 것을 다 따라 했지만 과연 그게 충분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는 달리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집 안에 모든 조건을 갖춰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필요한 것'들을 찾아볼수록 나는 당황스러웠다. 스크래쳐는 뭐며, 캣타워와 벤토나이트와 두부모래는 또 뭐고, 장난감 종류도 한 두 개여야 고르지 도통 뭘 사야 될지도 모르겠고, 하우스가 필요한 건 이해하겠는데 대리석은 왜 필요하고 심지어 빗질까지 해줘야 된다고...? 처음에는 멘붕이었다. 그냥 밥만 주면 되는 거 아니었어? 강아지와는 다르게 산책시켜주지 않고 그냥 집만 제공해주면 된다며?


 응, 아니었다.


게다가 고양이는 각자 성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것도 취향도 다 달랐다. 한마디로 '각묘각색.' 따라서 다른 고양이의 케이스는 참고만 될 뿐이었다.


 나는 하얀이를 철두철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부족하게 여기는지 아니면 이 정도면 만족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얀이의 취향을 파악하며 필요한 것들을 들이다보니 나의 공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집은 하얀이의 편의를 위해 대대적으로 개조되었다.


 그제야 나는 어째서 집사를 '세입자'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하얀이가 뛰고 점프할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큰 방에 있던 컴퓨터 책상과 책장을 작은 방으로 밀어 넣었다. 넓어진 큰방에 수직 스크래처와 하우스를 놓았고, 하얀이가 생각보다 점프를 높게 해서 슬개골 탈구 예방 매트도 깔아주었다. 심지어 (혹시 내 발소리가 커서 제대로 잠을 못 잘까봐) 아기 침대까지 마련해 그 위에 하우스를 올렸다. 게다가 침대에서 내려가기 힘들까봐 계단까지 놓아주었고 말이다!


하얀이가 오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큰 방 변화. 책장을 작은 방으로 다 옮기고 하얀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었다. 하얀이는 그중 계단을 특히나 잘 쓴다. (뿌듯뿌듯)


 베란다도 완전히 하얀이의 공간이 되었다. 나는 모든 짐들을 다 창고로 옮기고 베란다에 캣타워와 화장실을 놓았다. 길냥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자기만의 격리된 공간을 주는 게 좋다고 들었기 때문에 베란다를 주었는데, 그 뒤로 베란다 문을 닫기만 하면 하얀이는 울어댔다. 덕분에 집사는 겨울 내내 베란다 문을 열고 난방을 땔 수밖에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하얀이가 온 후 베란다 공간의 변화. 자기가 이제 집주인이라는 걸 알았는지, 자세와 표정도 조금 건방져졌다(오른쪽).


우리 집은 이렇게 하얀이 하우스가 되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냥판'이라나 뭐라나.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집을 고양이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하얀이를 데려온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얀이의 삶의 질은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었으니까.


 이제 하얀이는 밖에서 자유롭게 생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고 내가 놀아주지 않으면 다른 친구(인간이든 고양이든)를 구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행복이 내 손에 달렸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무게의 책임을 요구했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어도 막상 눈앞에 닥치니 압박이 꽤 컸다. 그래도 나는 차근차근, 그 책임에 따른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하기 시작했다.




 사실 하얀이 처음부터 우리 집에 잘 적응했던 것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은 상황을 파악하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했으니까.


 길냥이는 새로운 집을 안전한 곳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영역이 아닌 곳'으로 느낀다. 따라서 원래의 영역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한다.


 우리 집 베란다 창밖으로는 하얀이의 옛 영역이 보였는데, 며칠이 지나자 하얀이는 그 창밖을 보며 내내 울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커지는 하얀이의 울음소리에 나는 작은 방에서 문을 닫고 자야 했다. 혹시 모를 층간 소음 때문에 위아래층에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고 말이다. 특히나 베란다 문이나 현관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오면 하얀이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코를 박고 울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 그렇게나 이곳이 싫은가? 정말 내보내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섭섭해지기도 했다.


하얀이 탈출 기원 3종 세트. 왼쪽부터 차례대로 창 밖 보면서 울기, 현관문 틈에 코 박고 울기, 방묘문 너머 바깥세상 아련하게 쳐다보기.


 하지만 그렇게 2주가 지나자 울음은 거짓말처럼 그쳤다.


*경축*
황하얀, 집냥이로 노선 변경




 이제 하얀이는 현관문이 열리면 베란다로 먼저 도망부터 친다. 내가 침대를 탁탁 두어번 치면 올라와서 냥냥거리고, 내 두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잔다. 내가 책상에 앉아서 할 일을 하면 옆으로 와서 기웃거리다가 틈만 나면 궁디팡팡을 해달라고 엉덩이를 천장까지 들어 올린다.


 이제 우리는 진짜 룸메이트가 되었다.


 덕분에 나의 생활 패턴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바로 하얀이의 밥을 챙기고 베란다로 나가 감자를 캔다. 카펫에 앉아서는 정신을 차릴 겸, 옆으로 다가와 엉덩이를 드는 하얀이에게 모닝 궁디팡팡을 해주며 잠을 깬다. 그르렁거리는 하얀이의 정수리에 코를 묻고 뽀뽀를 해준다. 그러다가 냥펀치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밤에는 하얀이를 담요로 꽁꽁 감싸고 양치질을 시킨다.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내가 안아도 하얀이는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고 얌전히 치약을 핥아먹는다. (물론 나를 째려보는 것은 잊지 않는다.) 양치질 뒤에는 사료와 물을 30분간 치워두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고, 잠자리에 들 때는 하얀이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두 다리를 브이자로 벌리고 눕는다. 새벽에 뒤척일 때 잠에서 깨서 하얀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몸을 움직인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하얀이를 칠 때면 '이잉~?' 나를 보며 깜짝 놀라는 소리가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귀여 울 수 없다.


야니는 부르면 오고, 말도 많다. 새로운 집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뿌듯뿌듯)


 그러나 하얀이는 귀여운 만큼 (대부분의 반려동물이 그러하듯이) 손도 많이 간다. 고양이는 특히나 털이 문제인데, 매일 아침 빗질을 해주는데도 매일 탁구공 두세 개만큼의 털이 빠지는 걸 보면 탈모를 걱정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

 바닥에는 털 뭉치가 굴러다니고, 공기 중엔 낱개 털이 떠다니며, 밥을 먹다 입 안에서 털이 나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면 얼굴에 하얀 털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간지러워 죽겠다. 심지어 하얀색이라서 잘 보이지도 않아 떼는 데 애를 먹는다.

 모든 옷에 하얀이의 털이 박혀 있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리 청소기를 돌리고 돌돌이로 밀어도 매일 아침 하얀 털은 어제와 같은 곳에 촘촘히 박혀있다. 게다가 자기 침대보다 내 침대를 더 좋아하는 하얀이 때문에 나는 거의 털 위에서 잠을 잔다. 나에게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없는 게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다.


 털 문제 외에도 또 다른 번거로움은 생활 반경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틀이 넘어가는 여행은 쉽게 가지 못하고 본가인 서울에서 자는 일도 줄어들었다. 흔히들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아서 괜찮다고 하지만, 아마 그 어떤 생명체도 세상에 홀로 남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하얀이의 세상은 우리 집이고,
그 세상에는 나와 하얀이만 살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밖에 나가 있다 들어오면 하얀이는 그만큼 더 나를 반기고, 나는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놀아 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추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하얀이는 특히나 애벌레처럼 생긴 장난감을 좋아하는데, 그게 진짜 애벌레처럼 장애물 뒤로 숨으면 곧바로 사냥 자세를 하고 궁둥이를 흔든다. 그리고 마따따비 쿠션을 좋아해서 쥐여주면 핥거나 베개처럼 안거나 뒷발팡팡용으로 쓰면서 냐옹냐옹 그르렁거린다.


왼쪽부터 양치질 때문에 잡힌 하얀이, 궁디팡팡을 요구하는 하얀이, 애벌레 장난감으로 노는 하얀이, 마따따비 쿠션으로 뒷발팡팡을 하는 하얀이.


 또한 하얀이는 손 마사지를 좋아한다. 덕분에 나는 인간 마사저가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만져달라고 몸을 비비는 하얀이를 팔이 저릴 때까지 문질문질 슥슥슥 궁디팡팡을 해준다. 근데 억울한 게,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 이제 그만 됐다 싶으면 갑자기 때리기도 한다. 초기에는 그 강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많이 물리기도 하고 할퀴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내 손은 한때 상처투성이였다.




 친구들과 만나면 이제는 내가 하는 말의 반 이상이 하얀이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야니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내 핸드폰 사진첩에는 하얀이 밖에 는데, 최근에는 핸드폰 저장용량이 너무 부족해서 핸드폰도 바꿔버렸다. 원래 가지고 있던 핸드폰은 이제 내가 외출할 때 하얀이를 위한 노래를 틀어주는 라디오가 되었다.

 라디오를 틀어주고 밖에 나오면 나는 하얀이가 집에서 뭘 하고 있을까를 생각한다. 밥은 제 때 잘 먹고 있을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이건 진짜 빼박 '육아'다.


 한 번은 하얀이의 목덜미 부근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큰 몽우리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뭐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타고 타서 이상한(?) 페이지에 들어가 버렸다. 백혈병 백신에 대한 논란을 다룬 페이지였는데, 백혈병 백신 주사 부위에 부작용으로 악성 종양이 생긴 사례가 나와 있었다.

 그 당시 하얀이에게 백혈병 백신을 맞혔던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밖에서 잘 사는 애를 괜히 데려와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미안함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프지 말라고 말하며 눈물이 또르륵... (부끄럽지만 진짜 눈물 몇 방울 흘렸다.) 다행히 주사 부위에 근뭉친 것이었지만 그때까지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악성 종양이 생길 확률은 만분의 일 즉, 0.01%...;;)


 이렇듯, 내 몸집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세계를 완전히 바꾸었다.


 나를 울리기까지 한다.


 룸메이트를 하나 들인다는 생각으로 데려왔을 뿐인데, 어느새 내 마음속에도 들어와 있었나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하얀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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