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바다 Oct 07. 2021

'고양이가 사는 세상' 유니버스

9. #하얀이가데려온사람들 #동네의의미




 나는 하얀이 때문에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이곳이 고향이 아닌 나에게 정서적으로 충만함을 주었다. 그것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유대 관계를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어쩌면 내가 경험한 것처럼, 그들 또한 길냥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에게 믿음을 주었던 것 아닐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이라는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B 집사님

 하얀이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도와주셨던 B 집사님을 집으로 초대했다. 하얀이가 새로운 영역 적응을 끝내고 한 달, 아니 두 달 뒤쯤이었다.

 우리는 함께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나 서로의 길냥이 간택(내 경우는 셀프;;) 이야기를 풀었는데, 생각보다 길냥이가 사람을 따라서 집으로 들어오는 일은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동안은 내가 관심이 없어서 들었어도 까먹었거나, 묻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B 집사님은 하얀이의 간식을 한 다발 들고 오셔서 집사가 된 기념 선물로 나에게 주셨다. 어디에 좋은 성분이 들어있고 어떨 때 주면 좋은지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덧붙이셨다. 나는 답례로 캣그라스 키트 2개를 주문했다. 하나는 하얀이꺼, 하나는 집사님네 치즈냥이꺼.


A 집사님

 나에게 이웃은 한 명 더 있다. 이동장을 빌려주셨던 A 집사님.

 사실 A 집사님과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워낙 하얀이를 예뻐하셔서 하얀이의 사료를 동물병원에서 직접 사다주신 적도 있고, 하얀이의 목덜미에 몽우리가 생긴 것을 발견했을 때도 직접 보러 와주시기까지 하셨다.


 이제 우리는 나름 쩔친이 되었다. A 집사님은 자취하는 나에게 수제잼과 스콘을 가져다주시기도 하고, 김밥을 쌀 때 여분으로 내 것을 만들어주시기도 한다. 내가 잠시 여행에 갔을 때는 하얀이의 끼니를 챙겨주시기도 했다.

 끼니 말고도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한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통화도 한다.


 하얀이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이웃사촌들.


 생각해보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사라진 것 같다. 바로 옆 동, 옆 단지에 살고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내는 게 다반사니까.


C

 하얀이를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을 얘기하자면 친구 C를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공통의 지인을 통해 밥을 한 번 먹은 적은 있었지만 그 뒤로는 딱히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건지 지금도 신기하다. 이 또한 우연과 운명이 합쳐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제 길냥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학교 기숙사에서 키우는 길냥이와 그 새끼들에 대한 이야기, C의 본가 근처에 있는 사이좋은 치즈 고등어 커플에 대한 이야기, 물론 우리의 하얀 고양이 하얀이까지.


C의 친구와 하얀이

 게다가 나는 C의 친구 또한 소개받은 적이 있다. 말로만 듣다가 우연히 학교 앞에서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 집 근처에 작업실이 있어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하얀이와 창 너머로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집 밖에서 베란다를 보면 하얀이는 항상 저렇게 인간들을 하찮게 내려다보고 있다;;)


 C의 친구도 본가에서 길냥이를 두 마리 키운다고 했다. 역시나였다. 집사 마음이란 다 똑같은 것일까? 내가 하얀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이 친구도 자기 애들 스티커를 제작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동질감이 들었다. 실제로 봤을 때마치 원래 알던 지인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너무나 반가울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하얀이를 통해 옆 동, 옆 아파트, 친구의 친구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확장된 또 다른 인간관계가 있다.


 바로 친동생과의 관계이다.


그바다 동생

 나는 동생과 3살 차이가 난다. 우리 자매는 성격도 정반대고 관심사도 너무 다르다. 공통점이 없으니 할 말도 없고, 오랫동안 서로에게 무심하던 사이였다. 어렸을 때는 나름 자주 싸웠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든 다음에는 아예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채 각자 알아서 잘 살자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랑 내가 하얀이 때문에 자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얀이를 공동 케어하는데, 동생은 랜선으로 그리고 금전적으로 나를 도와준다.


 사실 처음에 하얀이를 데려올까 말까 고민하는 나에게 자신이 들어가는 비용의 반을 내겠으니 데려오라고 한 것도 동생이었다. 당시 서울 본가에 살았던 동생은 국가 주관 시험 때문에 우리 집에 잠시 오게 되었을 때 하얀이를 만났는데, 그 큰 경기도에서 하필 우리 집 앞에 있는 고등학교가 시험장소로 떴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군가의 빅피처(?)같다.


 그리고 더 솔직해지자면, 사실 '하얀 고양이'에 대해 우리에게는 히스토리가 있다.

  8년 전쯤에 동생이 하얀 고양이를 분양받아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와 나의 반대가 너무 심해 결국 동생의 친구 집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마침 입양 계획이 있던 친구네였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고양이 '쫑이'는 그 집에서 계속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만약 내 동생이 맡길 친구가 없었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가족들의 동의 없이 무턱대고 고양이를 데려온 동생도 잘못이지만, 동생에게 충격을 준답시고 새끼 고양이를 현관 밖에 두고 문을 닫은 나도 동생 못지않게 무책임하고 잔인했던 것 같다.

 '쫑이가 그 찰나의 순간 도망을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쫑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나의 그 순간적인 행동이 한 생명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많이 부끄러워진다. 어쩌면 내가 '하얀 애'를 유기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거니까.


 이렇듯 한때 나는 '무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던 사실들을 하얀이를 입양하면서 천천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고양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나니 길거리의 펫샵과 동물병원에 시선이 간다. 그전에는 음식점만 보였는데 말이다.

 게다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고양이 사진을 해놓은 친구들의 이름을 보며 생각한다 '헐 그래 너도 집사였구나.' 그러고보니 예전에 고양이 얘기를 언뜻 했던 것도 같고. 그때는 관심이 없어서 듣고 흘리기만 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혼자서 반가운 마음이 뒤늦게 드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눈을 돌려 내 책상 위를 보면 다이어리에는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문방구에서 산 자석 책갈피도 고양이 그림이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도 고양이가 된 인간이 주인공이고.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에 둘러싸여 있었던 나를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정말이지
'고양이가 사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고사세' 유니버스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왼쪽부터 D, E, F


 나의 친구 D는 A 집사님과 같은 아파트인 옆 단지에 살고 있다. 고양이를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고양이털 알레르기와 비염이라는 비운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도 하얀이를 보기 위해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온다. 나는 D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손에 돌돌이를 쥐여주는데, 마스크를 쓰고 돌돌이로 계속 털을 떼어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D의 눈을 충혈된다. 기침이 시작되면 그녀와 하얀이의 물리적인 사이는 멀어진다는 슬픈 이야기.


 친구 E는 학교에서 나와 가장 친하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랜선 집사를 겸업하고 있다. 내가 고양이에 입덕한 이후로 나와 인스타그램으로 고양이 릴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는다. E는 프로필 사진을 나보다도 먼저 하얀이의 사진으로 바꾸었다. 전톡에 매일 수십 장씩 올라오는 하얀이의 사진을 질려하면서도 더 많이 보내라며 나를 타박하는 E는 하얀이의 최고 덕후다.


 친구 F는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드림 하우스를 만들면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게 꿈이다. 분위기가 나와 닮았는지 아니면 매번 나의 옷을 빌려 입기 때문인지, 집에 오면 하얀이는 항상 F를 나로 착각해서 옆에서 부비부비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낯을 가리면서 F에게만 다가가는 이유가 뭘까? 어쩌면 예비 집사에 대한 합격 시그널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고양이가 사는 세상' 유니버스 속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장되고 뻗어나가고 있다. 나는 조금 더 충만해진 삶의 순간들 속에서 매일 많이 웃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화자찬일지도 모르겠지만)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말이다.

 나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동물을 키울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의 오래된 친구들도 모두 의아해하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더 의아하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신비한 경험이면서 동시에 불안한 경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모든 종류의 변화는 이렇게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 길냥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 결국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에 동의하시는 분 ☜


 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바로 다음 날 연락이 왔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친구 G. 바로 다음 날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G

 G는 요다와 베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였다. 첫째인 요다는 어렸을 때 펫샵에서 데려왔지만, 펫샵의 문제를 알고 나서 G는 집 앞에 버려져 있던 길냥이인 베이를 둘째로 입양했다.


 G는 집에서 키우는 두 마리의 고양이 외에도 근처 공원에서 세 마리의 길냥이(노랑이, 까망이, 샌디)에게 4년째 밥을 주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밥을 줘야 하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에는 동생과 책임을 분담하고, 점심에는 근처 중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챙겨주신다고 했다. 그 외에도 G에게는 고양이를 통해 알게 된 동네 지인들이 더 많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카페에 앉아 G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역시나!'를 외쳤다. 특히나 G와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 덕분에 내가 믿고 있던 바에 대해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


하얀이와 요다와 베이,
그리고 노랑까망이와 샌디가 아니었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의 이웃사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친구 G가 교장 선생님과 함께 4년째 밥을 주는 노랑이, 까망이, 그리고 샌디. 보아하니 노랑이와 까망이는 연인 사이인 것 같다. 샌디야 화이팅...ㅠ


 아마 이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의 인연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G 또한 동의한다며, 안 그래도 자기가 내 글을 보자마자 홀린 듯이 연락한 이유는 글에 있던 그 '자격조건'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자기 또한 고양이들을 통해 좋은 이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이처럼 길냥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 결국엔 인간이 살기 좋은 곳도 될 수있는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이 단순히 '고양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생명에 대한 관심은 옆에 있는 이웃에게로도 향하고, 내 안에서 어떤 변화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 관계와 변화는 결국 우리를 그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 믿고 있다. 아마 그곳에서는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모두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 '따뜻한 세상'을 위해 G와 나는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고양이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에게까지 닿는 그 마음이 더 소중해지기를 바라며, 우리는 우리가 사는 '안산'을 길냥이에게 보다 친화적인 곳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G와 나의 목표는 간단했다. 제일 먼저 안산을 길냥이가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결국에 그 마음이 인간의 삶까지 따뜻하게 하는 도시를 만들자. 전국적으로 우리의 액션이 확대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퍼져나갈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나름의 원대한 뜻을 품고,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고양이가 사는 세상' 프로젝트가 되었다.


'고양이가 사는 세상' 사업자등록증. 우리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과 출판을 생각하고 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 09화 우연이 운명이 되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