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얀이가데려온사람들 #동네의의미
나는 하얀이 때문에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이곳이 고향이 아닌 나에게 정서적으로 충만함을 주었다. 그것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유대 관계를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어쩌면 내가 경험한 것처럼, 그들 또한 길냥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에게 믿음을 주었던 것 아닐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이라는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사라진 것 같다. 바로 옆 동, 옆 단지에 살고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내는 게 다반사니까.
그리고 더 솔직해지자면, 사실 '하얀 고양이'에 대해 우리에게는 히스토리가 있다.
8년 전쯤에 동생이 하얀 고양이를 분양받아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와 나의 반대가 너무 심해 결국 동생의 친구 집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마침 입양 계획이 있던 친구네였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고양이 '쫑이'는 그 집에서 계속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만약 내 동생이 맡길 친구가 없었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가족들의 동의 없이 무턱대고 고양이를 데려온 동생도 잘못이지만, 동생에게 충격을 준답시고 새끼 고양이를 현관 밖에 두고 문을 닫은 나도 동생 못지않게 무책임하고 잔인했던 것 같다.
'쫑이가 그 찰나의 순간 도망을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쫑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나의 그 순간적인 행동이 한 생명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많이 부끄러워진다. 어쩌면 내가 '하얀 애'를 유기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거니까.
이렇듯 한때 나는 '무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던 사실들을 하얀이를 입양하면서 천천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고양이가 사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 길냥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 결국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에 동의하시는 분 ☜
하얀이와 요다와 베이,
그리고 노랑까망이와 샌디가 아니었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의 이웃사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이처럼 길냥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 결국엔 인간이 살기 좋은 곳도 될 수있는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이 단순히 '고양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생명에 대한 관심은 옆에 있는 이웃에게로도 향하고, 내 안에서 어떤 변화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 관계와 변화는 결국 우리를 그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 믿고 있다. 아마 그곳에서는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모두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