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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06. 2021

멋지고 근사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분 좋은 예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유난히 화창하고 가슴이 콩닥거리는 날. 그런 날은 왠지 멋지고 근사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설렘에 아침부터 설레발친다.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제안을 받은 게 없나 메일을 뒤적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반가운 연락이 온 게 없나 카톡을 들여 보기도 한다. 호르몬의 농간인지 날씨의 재간인지 모를 이런 날은 보너스처럼 다가온다.


나름 촉이 좋다고 자신하기에 근거 없는 예감을 백 퍼센트 맹신하며 곧 벌어질 어마어마한 '사건'을 기다린다. 이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내 인생뿐만 앞으로 우리의 삶은 찬란하게 빛나리라. 로또라도 사고 일등 당첨을 꿈꾸든가 해야지. 긁을 복권도 수중에 없으면서 복권 당첨을 꿈꾸듯. 뭔가 특별히 기다리는 일도 없으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꿈꾸듯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정말로 멋지고 근사한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이런 날일수록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출근해서 여느 때처럼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할 무렵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새까맣게 까먹는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야 떠오르며 덕분에 설레는 하루를 보냈으니 그것도 과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십 년 전인가.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삼십 대 중반이 넘어가니 더 이상 설레지 않더라고. 이제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소위 말하는 사회에서 꽤 잘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며 아주 길게 뻗어져 나가는 텅 빈 고속도로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철이 없는 나는 삼십 대 중반을 지나 후반을 향하는 지금도 여전히 멋지고 근사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환상에 종종 사로잡히곤 한다.


어떤 멋지고 근사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것인가. 그전에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 책을 출간하는 .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 꿈 리스트가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대부분 이뤘지만 여전히 단순한 예감에도 설레며 티브이에서나 나올만한 인생 대박도 꿈꾸곤 한다.


이십 대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그 예감이 틀렸다고 실망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본다. 결코 대박은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잠시라도 떠날 수 있는 지금의 삶을. 지금의 삶도 충분히 설렐 수 있음을. 지금의 나를 꿈꿨던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본다.


하지만 정말 근사하고 멋진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리스트보다  시급한 것은 삶에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삶에는 상상지도 못할 멋지고 근사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온전히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없다면 그것들도 나를 기꺼이 비켜가고야  것이다. 통제할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삶에서는 기쁨도 행복도 설렘도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원했던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갈 때는 초반에는 만족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식상해지고는 했고. 가장 멋지고 근사한 일들은 결코 짐작하지 못했던 곳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그럴 때면 내가 틀렸음에 늘 감사하고는 했다. 삶은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멋진 일들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의 지극히 제한적인 상상력과 두려움으로 삶이 줄 수 있는 기적들을 제한하거나 막아서고 있었다.


내맡기는 데는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전에는 삶에 저항하는 것만이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라 믿었지만. 지금은 삶에 기꺼이 내맡기고 싶다. 내맡긴다는 건 삶이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도. 내려야 할 결정을 미루는 것도 아니다. 삶이 그때그때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여전히 설레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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