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ese

루치오 폰타나

by 일뤼미나시옹


강렬한 붉은색 캔버스에 날카로운 칼자국이 나 있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대표작인 <공간 개념, 기다림 (Concetto spaziale, Attese)> 연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나도 하겠다" 싶을 만큼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현대 미술사에서 '회화의 평면성을 깨부순 혁명'으로 평가받는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Concetto spaziale'는 공간 개념, 'Attese'는 기다림을 뜻합니다. 폰타나는 이 '베기(Tagli)' 기법을 통해 캔버스라는 2차원 평면을 뚫고 그 뒤에 있는 미지의 3차원 공간을 열어젖혔습니다.

폰타나는 캔버스를 찢은 것이 아니라, 예리한 칼로 '공간을 만들어낸 것' 입니다. 캔버스를 찢음으로써 회화가 단순히 물감을 바르는 판이 아니라, 공간과 빛이 통과하는 입체적인 조각이 된 것이죠.

찢어진 틈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은 단순히 뒷배경이 아닙니다. 폰타나는 칼자국 뒤에 검은 거즈(가림막)를 덧대어, 그 틈이 무한한 깊이감을 가진 '우주'나 '미지의 공간'처럼 보이도록 의도했습니다.

폰타나의 붉은 캔버스는 어떤 구상적인 이미지도 없이 오로지 색(Color)과 선(Line)만 존재합니다.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붉은색이 주는 강렬한 에너지와, 칼자국이 만들어낸 고요한 침묵을 바라보세요. 꽉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캔버스 입장에서 칼질은 일종의 '상처' 입니다. 하지만 폰타나는 그 상처를 통해 새로운 차원을 열었습니다. 완벽 해야만 한다고 믿는 현대 사회에서, 그림은 "균열과 틈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위로를 줍니다. 완벽하고 매끈한 표면보다, 과감하게 선을 긋고 나아가는 용기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폰타나는 2차원(캔버스)을 뚫어 3차원(공간)을 제시했습니다. 이 칼자국을 보며 모니터 화면 너머, 혹은 현실의 답답한 벽 너머에 있는 '무한한 공간'을 상상해 보세요. 꽉 막힌 현실에 작은 숨구멍을 뚫어주는 듯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폰타나는 작품 제목을 붙일 때 아주 재미있는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칼자국의 개수에 따라 제목의 단수/복수를 구분한 것입니다.

칼자국이 1개일 때: <Concetto spaziale, Attesa> (공간 개념, 기다림) -> 단수형

칼자국이 2개 이상일 때: (공간 개념, 기다림들) -> 복수형

그림은 칼자국이 4개 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복수형인 'Attese'가 된 것입니다. 즉, 작가는 네 번의 '기다림'을 캔버스에 담은 셈입니다.


폰타나는 캔버스를 칼로 긋기 전, 몇 시간이고 캔버스 앞에 앉아 명상을 하며 완벽한 순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칼을 긋는 행위는 단 1초 만에 끝나지만, 그 한 번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고뇌하고 집중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캔버스가 찢어지면서 평면의 시간은 멈추고, 그 구멍을 통해 영원하고 무한한 우주의 시간(4차원)이 열리기를 기다린다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 틈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관람객인 우리가 호기심을 가지고 응시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폰타나는 종종 캔버스 뒷면에 'Attese'라는 제목과 함께, 그 당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이나 감정을 낙서처럼 적어두곤 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다."

"내일은 밀라노에 가야지."

"마리아를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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