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크 게르네그로스(Falk Gernegroß)
이 그림은 매우 사실적인 기법(하이퍼리얼리즘)을 사용하면서도, 현실과 꿈의 경계에 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화파(Leipzig School)의 흐름과 닿아 있는 작가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수작입니다.
그림에는 세 가지 존재가 등장합니다. 여성, 검은 고양이, 그리고 갈매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셋이 모두 오른쪽이라는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은 굳게 다문 입술과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프레임 밖의 무언가를 응시합니다. 이는 막연한 기다림이라기보다 결심에 찬 '출발 직전'의 표정입니다.
고양이는 여성을 뒤따르거나 혹은 앞서가며 동행합니다. 고양이는 종종 '신비'나 '독립성', 혹은 다른 차원으로 안내하는 영적인 존재로 해석됩니다.
갈매기는 하늘을 날며 가장 자유롭게 이동합니다. 이 세 존재는 지상(여성), 담장 위(고양이), 하늘(새)이라는 각기 다른 층위에서 동시에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물의 배경은 항구로 보입니다. 수직으로 솟은 돛대(마스트)들이 리듬감을 주며 서 있습니다. 시간은 해 질 녘 혹은 동틀 녘의 '매직 아워'입니다. 이 시간은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이며, 항구는 육지도 바다도 아닌 경계의 공간입니다. 제목이 '방랑자'인 것과 맞물려, 그녀가 머무름과 떠남 사이의 문턱(Threshold)에 서 있음을 암시합니다.
색채의 대비는 여성이 입은 선명한 녹색 재킷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배경의 보랏빛과 오렌지빛 하늘은 감성적이고 몽환적입니다. 이 색채 대비는 현실(그녀의 육체)과 이상(그녀가 바라보는 곳) 사이의 긴장감을 시각화합니다.
그림을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개념인 ‘탈주선’과 ‘유목’의 관점에서 읽어보겠습니다.
“지도는 그려져야 할 그 무엇이다.그것은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그것은 분해될 수도 있고 거꾸로 뒤집힐 수도 있으며, 끊임없이 수정될 수 있다.” <천 개의 고원>
그림 속 여성은 물리적으로는 멈춰 있습니다(정주). 그녀의 옷차림( 단정한 셔츠와 재킷)은 문명화된 사회의 규율을 따르는 듯 합니다. 배경의 돗대들은 수직의 선들로, 들뢰즈가 말한 “홈패인 공간, 즉 질서와 규율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과 뒤따르는 고양이와 날아가는 새는 기존의 질서를 뚫고 나가나는 백터(화살표)처럼 작용합니다. 들뢰즈는 기존의 굳어진 영토(관습, 사회적 역할)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는 것을 ‘탈영토화’ 라고 불렀습니다.
그림의 제목이 방랑자 임에도 그녀가 걷지 않고 서 있는 이유는, 진정한 방랑이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변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낡은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자아로 이행하는 탈주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갈매기와 고양이는 그녀의 내면이 이미 ‘새’처럼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경계를 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메타포입니다.
“떠남은 발을 떼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돌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라고 그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녹색 재킷)에 묶여 있으면서도 영혼(고양이와 새)은 언제든 저 너머의 붉은 하늘(미지의 세계)로 향할 수 있음을 포착했습니다. 여성의 단호한 눈빛은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직조하겠다는 실존적 결단의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프루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시선)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