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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Oct 30. 2022

인생에서 기대 말아야 할 세가지

  각자 꿈의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나에겐 뉴욕이었다. 나는 드라마 덕후다.집중력이 제로에 수렴하고 하나를 끈기 있게 못 하는 내가 끊임없이 하다는 것이 있다면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한국, 일본, 미국, 영국 드라마 나라도 가리지 않고 보고 장르도 가리지 않고 다 본다. 어렸을 적엔 드라마 피디가 되는 게 꿈이었다. 특히 미국 드라마를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 많이 본 미국은 한국이 답답했던 나의 가치관에 많은 것들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소재들이 많았다.


미국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쿨했다. 찌질한 일들이 일어났고 그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빨랐다.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한국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보다는 예의를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한데 미국 드라마 안에서는 나중에 사과할지언정 일단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감정을 숨기면서 살기 급급한 나에게는 그 모습을 동경했다.


드라마의 배경은 대부분 뉴욕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예쁜 교복을 입고 싸우고 파티하는 그곳은 뉴욕이었다. 노래도 있다. 뉴욕 뉴욕 뉴욕~ 초등학교 때 시애틀에 간 적이 있지만 거기서부터도 한국에서 미국에 간 만큼 더 가도 또 있는 미국 도시는 같은 말을 쓰는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어느 곳보다 뉴욕에 갈 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드디어 뉴욕에 가다니!! 뉴욕이라니. 비행기에서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숙소에 짐을 넣고 거리로 나왔을 때, 나는 벅차서 소리라도 지를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조금 걷다 보니 뭐야. 겨우? 그냥 고층빌딩이 즐비할 뿐이네? 라는 느낌에 곧 실망하고 말았다. 그 순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문장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젠가 영화는 기대하고 보면 실망이 큰 법이라는 말을 듣고는 내가 거기에 덧붙여 소개팅도 기대하면 실망을 많이 하게 되니 소개팅을 나갈 땐 기대 없이 나가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조언하곤 했는데 어쩌면 여행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인가. 갑자기 씁쓸해졌다.


기대를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대를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이미 기대했다는 거다. 이미 부푼 마음은 줄어들 길이 없다. 내 기대가 나의 미래를 망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기대를 왜 했을까. 또 망쳐지겠네. 라는 생각에 무언가 시작도 되기 전에 울적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조금 더 생각해 봤다. 기대라는 걸 할 정도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일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아주 기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더 나중에 기쁘기 위해서 지금의 기쁨을 죽이는 행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마음껏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여행을 기대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된 거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뉴욕에서도 잠깐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비행기가 뉴욕에 착률했을 때의 그 떨림,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과 센트럴파크에서 햇볕을 쬐면서 내가 그 센트럴파크에 와있다는 사실에 벅차 했던 그 순간들 모두 내가 쌓아온 기대 때문에 느꼈던 감정들이니 말이다.


기대를 만들었던 과거도, 기대도, 기대로 인해 느꼈던 실망과 아쉬움까지 모두 다 소중한 경험이다. 내 소중한 여행이다. 내 소중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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