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요리 한다는 것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큼 식재료에도 관심이 많아 마트나 시장가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도시마다 꼭 가는 곳이 기도 하다. 특히 시장도 좋지만 공산품부터 신선식품까지 다 있는 마트를 더 좋아한다.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10시간을 버스를 타고 푸콘이란 도시에 갔다. 푸콘은 칠레의 남부에 있는 도시로 활화산이 있어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남들은 다들 여기서 더 밑에 있는 유명한 국립공원인 토레스델파이네를 가지만 나는 이곳에 오기로 했다. 조용하고 동화같은게 꼭 스위스같은 느낌을 받아 포근하고 좋아 조용히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외국에서 오는 유명한 관광지 보다는 조금 더 로컬 사람들이 가는 휴양지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첫날을 머물 숙소인 통나무로 지어진 호스텔은 크고 깔끔했다. 방은 1인실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 작았다. 작은 매트리스가 있고 옆에 배낭을 겨우 놓을 정도 였지만, 비스듬하게 있는 천장의 창문으로 하늘이 보여 무척이나 낭만적이였다. 짐을 내려놓고 동네 구경을 하다가 마트를 발견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크기 정도 되지만 그래도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갔던 마트에 비해 더 크고 깔끔하고 물건 구성도 다양했다. 장을 보지 않고 베길 수가 없었다.
여행와서 처음으로 요리를 해 먹기로 했다. 메뉴는 뻔했다. 파스타다. 나는 파스타를 무척 좋아한다. 만드는 것은 라면 못지 않게 쉬운데, 재료의 다양성은 훨씬 높고 맛과 영양도 훌륭하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건 오일 파스타. 웬만해선 만든 음식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먹는 편인데 처음 몇 번은 그대로 버렸을 정도로 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그나마 손님 요리로 봉골레를 주로 할 정도로 오일 파스타를 만드는데 제법 자신이 붙었다.
겨우 한끼 해 먹을 건데도 흥분해서 장을 봤다. 좋은 올리브 오일과 기본 스파게티보다 살짝 넓은 링귀니면, 매운맛을 도와줄 이탈리안 고추 페페론치노와 한국인 답게 마늘을 한가득 샀다. 음, 그래도 뭔가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하고 싶은데? 매장을 세바퀴쯤 돌 때 쯤 다양한 종류의 햄을 팔고 있길래 한번 첨가 해 볼까 싶어서 고심끝에 한가지를 집어 들었다. 오일 파스타랑 어울릴라나? 맛이 있을라나.. 처음보는 종류라 확실하지 않았다. 흠. 도전이다. 곁들일 와인까지 한병 집어 들고 당당하게 숙소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요리를 하게 된건 어쩔 수 없었다. 마트도 마트지만 숙소의 주방이 너무 근사했기 때문이다. 통나무로 된 벽에 전시해 놓듯이 다양한 사이즈의 후라이팬을 걸어 둔 벽면. 널찍한 개수대. 그리고 통창으로 보이는 나무와 하늘. 이 완벽한 곳에서 내가 음식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음식을 해 먹거나 통기타를 치며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먼저 마늘을 저몄다. 뛰어난 칼질 실력은 아니지만 편 마늘을 써는 데 문제는 없다. 2톨이면 된다는 마늘을 5톨 정도는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 아닌가. 물을 끓여 파스타를 익히는 동안 프라이팬에 ‘한 5인분 할껀가?’ 싶은 정도로 오일을 부어주고 프라이팬 5cm 위로 손바닥을 갖다 대며 온기를 체크하다가 마늘을 넣어준다. 아주 아주 약한 불에 천천히 마늘을 익혀준다. 기름에 지글지글 잘 구워주면 나오는 부드럽고 달달한 마늘 맛을 낼 거다. 마늘이 익어가니 오늘의 도전 초리조햄 비스무리한 것을 꺼내 본다. 넣는다. 음. 냄새가 이상해. 벌써 잘못된 거 같다. 일단 익힌다. 페페론치노도 넣고 면도 이어 넣는다.
“마늘을 그렇게 많이 넣어?”
“아 나는 한국인이라 하하”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말을 걸어온다.
“냄새 좋은데?”
“그래? 좀 줄까? “
“아냐 나도 방금 저녁 먹었어. 고마워.”
그래 맛을 보장할 수 없어서 조마조마했는데 잘됐다! 접시에 한가득 담고 와인을 따르는 내 입꼬리는 내려오지 않았다. 접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군침이 돈다. 긴장하며 포크를 들었다. 면을 돌돌 말아 첫입을 넣자 아.
이국적인 맛이 났다. 실패다. 거절한 그 친구. 눈치를 챘던 걸까.
첫 요리는 신났지만, 맛이 없어 기분이 가라앉았다. 안주로 먹으려고 산 크래커에 치즈를 저며 발라 와인과 먹으면서 요상한 맛에 지친 혀를 달래줬다. 사실 난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 파스타면을 끓여 소스를 부어 먹곤 했으니 그때가 처음이라고 한다면 그럭저럭 10년 차가 넘는데도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일단 장 보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의 시작은 장보기니까 이미 시작부터 두근거린다. 다양한 햄이나 치즈가 한가득 모여있는 것이나 특이한 종류의 파스타면을 보거나 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다. 다양한 식재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사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식사는 매일 경험 할 수 있는 모험이다. 그리고 나면 요리할 때는 온전히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재료를 다듬고, 썰고, 볶고 한눈팔 틈이 없다. 집중력이 약한 나에게 의식 없이 집중할 수 있는 행위는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다준다. 이 또한 꽤 축복이다.
생각해보면 정확히는 남이 아닌 나를 위해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니 누군가에게 요리해줄 땐 스트레스가 쌓인다. 남에게 대접할 때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긴장이 되는지 가뜩이나 훌륭치 못한 요리 실력이 더 발휘가 안 된다. 게다가 상대방의 간도 맞춰야 하고 양도 맞춰야 하니 더 엉망이 된다. 일단 나를 위한 요리를 할 때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부담도 덜하다. 엄청 맛있진 않아도 내 입맛엔 그럭저럭 맞는다. 양도 한껏 할 수 있다. 1.7인분 같은 애매한 양도, 애매한 간도, 나만 오케이면 만사 오케이다.
요리는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정성스러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정성껏 대접하는 행위. 나름대로 자신을 사랑한 방식이지 않을까? 자신을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와인이 술술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