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장의 육아일기
"이번 주말에 초롱이와 초콩이 피부과 치료 마치고 어디 갈까?"
"글쎄, 안산자락길을 가기엔 날씨가 추울 수 있으니.."
"방학이니 박물관을 좀 다녀보며 좋을 것 같은데,.."
우리는 두 달에 한번 아이들의 피부과 치료를 위해서 서울 종로로 나선다.
처음엔 초콩이의 오른쪽 손등에 있던 이소성몽고반점을 제거하기 위해서 돌 쯔음부터 다녔던 피부과에 가고 있다. 손등에 있던 이소성 몽고반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차츰 엄마의 욕심이 생겼다.
'등에 조금 남아있는 이것도 치료해 볼까?'
'발목에 있는 것도 지워볼까?'
그렇게 하나둘씩 초콩이의 몸에 남아있는 몽고반점이 사라지지 않아서 치료로 하나씩 지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팔뚝에 있는 갈색 반점도 제거하고 싶어서 선생님께 문의드렸더니 카페오레 반점이라 이전과는 다른 치료로 해야 하는데, 비용은 훨씬 적지만 제거되지 않을 확률이 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작용으로 커질 수도 있으니 한두 번 해보고 결정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초콩이의 팔뚝에 있는 흩뿌려진 카페오레 반점을 제거하기 위해서 두 달에 한 번은 서울 종로의 피부과로 간다.
항상 이동시간이 아까워서 아침 일찍 진료로 예약을 하니, 치료가 끝나고 나면 대략 11시가 안 되는 일정이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근처 인왕산의 안산자락길을 산책하고 그 인근 우리만의 맛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한두 군데의 박물관을 들렀다가 돌아오곤 했다.
이번 일정도 그래서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내가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들로 미처 일정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SNS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덕수궁의 모던라이트였다.
덕수궁 특별전
모던라이트
대한제국 황실조명
남편에게 누군가 다녀온 후기를 보냈더니 괜찮다고 해서 우리는 일단 치료가 끝나면 가벼운 점심을 먹고 덕수궁으로 가는 일정으로 잡았다. 그러고 나서 시간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을 갈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초롱이의 겨울방학에 너무 좋은 계획을 짰다며 만족해했다.
"그래, 겨울방학인데, 서울에 박물관이 많잖아! 박물관에 한두 군데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
게다가 덕수궁에서의 모던라이트는 무료전시라니 너무 좋다!!"
우리는 요즘 매일 뉴스에 나오는 광화문 집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우리들만의 일정이었다.
종로에서 치료를 마치고, 미리 정해 둔 대학로 인근 카페에서 베이글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아무런 생각 없이 덕수궁 쪽으로 차를 돌렸다.
가다 보니 차가 너무 막혀서, 차를 근처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주차를 하고 덕수궁까지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은 날씨가 사실 영상 5도까지 올라가서 전혀 춥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오늘 광화문은 윤석열탄핵반대 집회가 더더욱 강한 시위를 하고 있어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바로 주차를 하기도 어려웠다. 우리는 겨우 주차를 하고, 덕수궁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각자 한 명씩 손을 잡고 나섰다.
그리고 우리는 태극기를 휘날리는 집회의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광화문 집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이었고, 그 인파를 뚫고 지나야 덕수궁으로 갈 수 있었다. 초콩이는 생전 처음 접하는 고성과 시위, 그리고 사람들의 인파를 뚫고 나가는 것에 놀라서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그렇게 20분여를 걸은 후에야 우리는 덕수궁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사실 걸어오면서, 다시 되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되돌아가기도 왔던 길이 아까웠다.
그렇게 들어온 덕수궁 문을 들어서면서 우리는 밖의 시끄러운 집회현장의 소리를 모두 잊었다.
예전에도 분명히 초파와 나는 데이트를 할 때 덕수궁을 와 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온 덕수궁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겨울이라 나뭇가지는 앙상했지만, 조금 따뜻한 날씨에 일단 뛰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덕수궁 안으로 들어갔다.
오는 내내 인파에 지쳐서 그런지 초파는 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단언했지만, 곧바로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덕수궁의 이곳저곳을 찍느라 조금 늦게 걸어가는 나의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역시, 사진 찍어줄 거면서 튕기기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곳곳이 포토존이었던 덕수궁의 하이라이트는 모던라이트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던 곳이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영상미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재미없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아이들도 너무나 재미있어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고종의 대한제국 황실조명에 또 한 번 놀랐던 하루였다.
덕수궁 안에 붉은 벽돌과 르네상스와 고딕양식의 2층 구조의 유럽풍 건축물이라니, 그 우아함과 세련스러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나와 초파는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곳곳에 아이들과 함께 조명 구경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고, 입으로 후 불면 조명이 꺼지는 마법 같은 재미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두어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이제 그만 가야겠다고 나서면서도 너무 신나 했던 아이들과 우리는 사진첩에 또 100장 가까이의 사진을 건졌으니 나로서도 만족할만한 하루였다.
다시 한 번 집회속을 뚫고 교보문고 광화문점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 마음에 남는 하루였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도 나도 너무나 강행군이었던 하루에 혼자 조용히 오디오북을 들으며 오고 싶었지만, 뭔가 들떴던 하루였기 때문인지 아무도 차에서 잠들지 않았다.
게다가 나 혼자 조용히 오디오북을 들으려던 계획마저 깨졌다.
"엄마, 집에갈 때 오디오북 틀어줘! 엄마거 말고 우리거!!"
이런, 나는 돌아오는 길에 토지속으로 푹 빠져들려고 했지만,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고심끝에 고른 한시간 20분여 짜리 키즈 오디오북은 우리집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끝이 났다.
"타이밍이 아주 딱인데? 어떻게 그렇게 딱 맞춘거야?"
초파의 놀랍다는 말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차가 밀리니까, 당연히 한시간 반은 걸리겠다 싶어서 그 정도 길이의 오디오북을 선택한거지!!!
왜 오늘은 다 들 안자서!!!!! 다음부터는 돌아오는 길에는 무조건 나 혼자 들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