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지는 꽤 되었다.
2022년 나의 첫 공저책을 쓰면서 어찌어찌 작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실 이제까지 한 번도 일기 말고는 글을 써 본 적도 없는 내가 작가라니 공저책이 나오고 몇 번의 북토크를 할 때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움에 땅 속으로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첫 시동이 걸린 나는 함께 글을 썼던 분들과 함께 브런치에도 도전하게 되었고, 한 번의 탈락 후에 2022년 말 선물처럼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브런치에서 더 까다롭게 작가 심사를 한다고 하여,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목차와 한 편의 글을 써서 올렸다. 한번 떨어지고 나서는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에 휩쓸려 다시 재도전, 부족했던 부분을 나름 분석해서 보강하여 재도전하니 기적과도 같은 합격 메일을 받았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은 대학 합격 전화 이후로 처음인 듯 느껴졌다.
수능 일 세대였던 나는 두 번의 수능을 치렀고, 날이 유달리 추웠던 겨울 내가 지원했던 학교의 자동응답에서 "배윤경 수험생, 지원하신 ** 과에 합격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었다.
그 당시 분당에서 제법 좋은 일식집을 운영하고 계셨던 아빠는 기분이 좋아서 온 동네에 우리 가게의 시그니쳐라고도 할 수 있는 새우튀김을 돌렸고, 대장암투병 중이셨던 아빠도 그 순간은 가게에서 함께 합격 소식을 들으며 박수를 치고 좋아하셨다.
그 이후 수많은 축하받을 일,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일들이 이어졌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일은 바로 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의 이야기와 나의 생각을 글로 쓰고 싶다는,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엄마와의 추억을 하나씩 글로 쓰고 싶었던 나의 바람이 이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서는 왠지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만이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읽는 분들 모두 너무나 홀리듯이 글을 잘 쓰셔서 나 같은 사람이 쓰는 공간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옆에 살아 계셨다면 아마도 매일 같이 자랑하고, 공저책이지만 나의 첫 책이 나왔다는 것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자랑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마음속으로 혼자 뿌듯함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부담감은 여전히 점점 풍선처럼 커지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글을 올리는 것이 주춤할 때쯤, 내가 모임으로 하는 함성독서모임에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래서 그냥 나도 다시 써볼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내 글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모임에서 함께 응원해 주고 독려해 주는 글에 용기를 얻어서 한편 두 편 나의 이야기를 써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추억과 나의 생각, 그리고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될 수 있고, 혹시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쓴다.
2025년 새로운 도전으로 브런치에 매일 글쓰기를 도전했고, 꽤 많은 글을 거의 매일 썼다. 하지만 어느새 한 번 두 번 핑계 아닌 핑계로 빠지게 되니 다시 브런치는 다른 일상에 잠시 뒤로 밀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연재를 시작한 [사진으로 기록하는 나의 하루] 로 평일 매일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구독자를 확인 해 보았다.
오늘 아침 99명의 고마우신 분들이 나를 구독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내가 참여중인 글쓰기 톡방에 나의 구독자가 99명이라고 말을 했더니, 더 감사하게도 아직 구독하지 않았던 두분이 간발의 차로 구독하여 주셨다.
너무나 감사한 나의 구독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오늘의 행복과 감사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브런치의 오늘 기록에 남기기로 한다.
100번째보다 더 귀중한 101분의 구독자를 가진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매일 기록하는 브런치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