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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Aug 24. 2023

비둘기와의 전쟁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미움받는 이 새는 무엇일까요? 맞아요. 비둘기입니다. 전에 20년 간 살던 단독주택에선 비둘기는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아침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구 구구’(비둘기만의 음정과 리듬이 있음) 울 뿐이었지요. 그때는 처마에 집을 짓는 제비나 참새, 또는 새벽부터 단잠을 깨우는 이웃의 수탉이 문제였지요. 하지만 몇 년 전에 이사 온 이곳에선 난간과 에어컨 실외기 위를 비둘기들이 장악했답니다. 조용히나 있으면 그냥 넘어갈 텐데, 참 수다쟁이들입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일까요? 듣다 지쳐 창문을 손바닥으로 탕 치기라도 하면 놀래서 푸다닥 도망간답니다. 비둘기는 뇌에 GPS 같은 기능이 있어서 집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능력이 있다던데, 이 녀석들의 집은 우리 집으로 설정이 된 모양이에요. 어느새 집으로 기어들어와 구구 수다를 떨고 있으니까요.


특히 부모님이 쓰시는 안방 창문엔 에어컨 실외기가 있어서 비둘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랍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그 위층에도, 또 위층에도 실외기가 있으니, 실외기 위에 앉은 비둘기들은 아래를 향해 거침없이 똥을 싸질렀습니다. 결국 이웃들은 비둘기가 실외기 위에 앉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뭔가를 올려놓더니, 나중에는 비둘기가 앉지 못하도록 버드스파이크를 올려놓은 집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창문을 열고 비둘기를 향해 ‘야아! 이 놈들아!‘라고 소리를 치며 비둘기를 쫓던 엄마도 결국 버드스파이크를 올려놔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인터넷으로 버드스파이크를 주문하는 대신 동네 마트에 가서 두 가지를 사 오셨습니다. 바로 고기구이용 그릴과 케이블 타이였지요!


그 후 저녁마다 엄마가 티브이를 보며 그릴에 케이블 타이를 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끼워야 될 게 하도 많아서 몇 번 해봤는데, 초등학생 때 했었던 스킬 자수 같기도 하더라고요. 결국 엄마는 홈메이드 버드스파이크를 완성했고, 실외기 위에 올려둔 뒤 가족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지요(’ 이거 봐라~‘). 비둘기들은 놀랐는지 며칠은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들은 새로운 안식처를 찾고 말았습니다. 바로 실외기 옆 난간이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제가 검은 비닐봉지를 난간에 묶는 방식으로 해결했지만, 부모님이 안방에 들어갈 때마다 검은 비닐봉지가 비둘기인 줄 알고 깜짝 놀라는 부작용을 몇 주 견뎌야 했습니다. 이렇게 비둘기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가 했습니다.


하지만 한두 달도 되지 않아 또 ‘야아! 이 놈들!!’이란 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왔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글쎄 용감한 비둘기 두 마리가 실외기 뒤쪽 좁은 공간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닥에 나뭇가지가 여럿 있는 걸 보니 집을 짓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엄마는 결연한 표정을 짓고 ‘우리 집에서 알을 낳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더니 또 마트에 가서 고기구이용 그릴과 케이블 타이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전에 한 번 만드시더니 이번엔 순식간에 완성하시더군요. 두 번째 버드스파이크를 실외기 옆면에 세워 비둘기들이 빈 공간으로 들어올 수 없게끔 막아두었습니다. 설마 비둘기가 이 좁은 통로로 들어올 수 있겠어요?


네! 들어올 수 있더군요! 새들은 머리만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간다더니 그 좁은 통로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 비둘기 두 마리는 여기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기어들어오는 것일까요? 아빠는 우리 집 앞에 나무가 있기 때문에 나무에 앉아있던 비둘기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것 같다고 추측했습니다. 엄마는 우리 집의 뷰가 좋아서 그런 거라는 의견을 내놓았지요(아무리 봐도 MBTI에 NF가 들어갈 사람). 저는 뭐라고 했냐고요? ‘그 비둘기는 분명 불륜이다! 그래서 그 비좁고 음침한 곳으로 들어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때요. 그럴듯하지 않습니까?(참고로 저는 NF가 아니라 ST입니다) 뷰가 좋던 불륜이던, 왜 우리 집을 선택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비둘기를 쫓아내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엄마가 아까부터 자꾸 갈비뼈가 아프다고 합니다.


며칠 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엄마의 갈비뼈 두 개는 똑하고 부러져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두 번째 버드스파이크를 설치할 때 난간에 갈비뼈가 눌렸고, 그 바람에 부러져버린 것이었습니다. 비둘기 잡다가 사람 잡게 생겼어요. 엄마는 삼복더위에 복대를 차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비둘기가 들어와도 ‘그 친구들도 살아야지’라는 온건적 입장이었습니다만, 가족을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지요. 이렇게 된 이상 비둘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싱겁게 끝났습니다. 두 번째 버드스파이크와 난간 사이의 좁은 통로로 비둘기가 들어올 수 없게끔 막아두니 더 이상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어쩐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재개발 현장의 폭력적인 용업 업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비둘기의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우리도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고요…


일주일 뒤,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다행히 엄마의 갈비뼈는 원래 모습으로 붙어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8월은 이미 해둔 모종 작업 말고는 큰일이 없어서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곧 골다공증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젠 나이도 있으시니까요.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엔 그 비둘기들은 어디서 이 밤을 견디고 있을지 생각합니다. 옛 국가 행사 때 수십, 수백 마리의 비둘기를 날리느라 개체수가 이만큼 늘어났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 집 난간에서 들리던 구구 소리는 ‘너희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선 왜 책임지려 하지 않느냐’란 외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모로 미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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