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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하 Oct 25. 2022

재현되는 진실의 가치에 대해

우연과 상상(2021),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우연과 상상>에서는 총 세 가지의 사례를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된 사건과 그로 인해 행하는 인과관계로서의 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연은 항상 선행한다는 것이다. 상상은 인간이 역행할 수 없는 우연을 대처하는 방식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은 진리에 가깝다. 하마구치 영화에서의 진리 혹은 진실이란 비극적이고 비루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후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이 진실은 대체되기 마련이다. 작품 속에서 방점은 후자에 찍혀있는 것이다. 그는 현실이 얼마나 볼품없는 것이든 간에, 인간의 상상을 덧입혀 만든 거짓이 그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이 사실은 지난 영화들을 통해,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메이코는 유턴을 통해 심적 변화의 궤적을 한밤중 도로 위에 그려 넣는다. 무려 이 년 전의 애인이었던 카즈아키를 찾아가 쏟아놓는 밀도 높은 대화로 소기의 성취를 얻는다. 카즈아키를 마법이라고 불리는 추상적 믿음에 가담하도록 만든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카즈아키의 백허그를 받는 그녀의 모습은 완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고작 몇 초 지나기도 전에 불청객이 방문하자 그녀는 황급히 그곳을 떠난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불청객으로 불쑥 모습을 드러낸 메이코는 텅 빈 사무실의 일부를 메꾸어 갈 즈음 다시 원 주인에게 자리를 내어준 꼴이 된다. 그때 원 주인이었던 여직원은 중요한 행동 방침에 대해 카즈아키에게 권고한다. 따라가지 말 것. 뛰쳐나가는 여자들을 모두 붙잡고 싶은 카즈아키는 잠시 동안이라도 그곳에 발을 붙여두었을 것이다.

 이 단편에서 마법이란 무엇인가. 사랑으로 대변되는 좀처럼 식지 않는 마음에 관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보다 좀 더 불확실한 무언가에 대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우연처럼 덥석 물어버린 마법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도록 주어진 현상일 뿐이다. 츠구미와 카즈아키 앞에서 진실을 발설했을 메이코는 인간관계를 망칠지언정 자신의 생각을 말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줌 인/아웃을 통해 현실로 돌아온 메이코는 아무런 일도 그르치지 않고 자리를 빠져나온다. 카즈아키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지만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상상은 현실보다도 그녀에게 중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뜀박질 이후에 에필로그처럼 들어있는 공사장의 풍경은 그녀의 아이폰에 영원히 남도록 되어있다. 미완성된 성장의 일부를 맞닥뜨리게 된 그녀는 어쩌면 이 사진을 통해 다시 한번 유턴을 반복한 것이다. 그렇게 무엇보다도 더 불확실한 미래는 이어질 것이다. 카메라도 고개를 들어 이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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