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워홀 일기] 1. 출발 그리고 도착
Somewhere I know in my heart
I'll find happiness
Eventually
it'll come to me
and suddenly
I'll be gone
I'll be gone
- Nive, Getaway
알람도 안 울렸는데 새벽에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떠졌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밖에선 엄마가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거실 불도 켜져 있고 부엌 불도 켜져 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정말 가는구나. 어떡하지.
출국 전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렀다. 메뉴로는 역시 한식이 좋을 것 같아 설렁탕을 택했다. 엄마는 된장찌개, 언니는 육개장을 골라 여러 메뉴를 맛보았다. 헛헛한 배를 채우고 공항에 오지 못한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씩씩하게 잘 다녀오라는 말을 전했고 이모는 갑자기 말이 없어지더니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모 왜 울어!
몰라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은 전염된다던가. 이모의 목소리를 듣고 꾹 참고 있던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탑승장에 들어가기 직전 엄마를 껴안자마자 눈물샘은 기어이 터져버렸다. 엄마는 창피하게 울지 말라고 했지만, 내 뒷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 엄마가 뒤돌아서 눈가를 슥 훔치던 모습을 나는 봤다.
혼자 게이트로 걸어가며 다시 뛰쳐나갈까 잠시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1년간의 삶. 이 여정에 백 퍼센트의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샤를 드골 공항은 3년 만이었다. 익숙한 말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오만 혹은 과장일 것이라 생각하며 어둠이 내려앉은 공항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사방에서 들리는 게 프랑스어인데 내 입에서 프랑스어를 내뱉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을 망설여야 했다. 불어불문학도로서 대학 4년 내내 불어만을 배워 왔는데도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실수를 하기 싫어 문법적 오류가 없는지 살피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몇 번 돌리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듯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입을 열었다.
“Excusez-moi... Ça met combien de temps jusqu’à la gare Montparnasse?"(실례합니다. 몽파르나스 역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문법과 발음에 신경 쓰며 신중하게 내뱉은 첫 문장. 간신히 입을 떼고 나서도 두근거림은 가시지 않았다. 프랑스 땅에서 프랑스어로 말을 했다는 뿌듯함과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싶어 민망함도 느껴지던 무렵 퍼뜩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저 사람이 진짜 버스 기사는 맞나?' 사방은 어둡고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두려움이 몸 곳곳에 퍼져 플랜비를 생각하기 시작한 찰나, 그는 말했다.
“Une heuere dix.” (1시간 10분이요.)
걱정이 무색하게도 기사의 대답은 이토록 간단했다.
짐을 싣고 달리는 버스의 창밖은 푸르스름했고 내 마음은 불그스름했다. 고속도로를 지나 시내에 접어들자 주황빛 조명을 켠 카페와 밤을 즐기는 파리지앵들이 보였다. 파리는 여전히, 늘 그렇듯, 너무 예뻤다. 밤거리를 걷자 흉흉했던 마음은 녹아 사라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설렘과 익숙함,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감정을 가지고 나는 다시 프랑스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