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채소는 생경했다.
리옹에서 처음 장을 보러 갔을 때였다. 마트에 진열된 채소들은 내가 늘 먹던 종류의 것들이었지만 어딘가 달랐다. 김이 뿜어져 나오는 쇼케이스에 진열된 그것들은 왠지 어색했고 이질적이었다. 당근에 흙이 묻어 있지 않았다. 토마토의 크기가 일정했다. 호박에는 자그만 흠집도 없었다. 모나지 않고 깨끗한 것들로 선별된 채소들. 항상 최상의 품질만을 제공합니다! 마트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채소에 흙이 묻어 있으면 더러운 걸까? 다리가 두 개 달린 당근과 울퉁불퉁한 토마토는 저급인 걸까?
엄청 크고 이상하게 생긴 호박.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지만 그대로 판다
우핑에 참여하는 농장은 모두 유기농장이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약을 뿌리지 않으며 오직 사람의 손으로 밭을 일구고 잡초를 뽑는 곳들이다.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게 수확한 채소는 흙을 벗어나면 금세 썩고 문드러진다. 그래서 오늘 딴 채소를 오늘 파는 것, 그것이 내가 일했던 농장의 법칙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바지런히 수확한 채소들을 오후에는 큰 마을에 나가 팔았고 주말에는 도시에 나가 팔았다.
토요일은 인근 도시 비아리츠에서 장이 열리는 날이다. 새벽 4시에 차를 타고 나가 두 시간을 달렸다. 하루는 장에서 팔기 위해 살라드salade를 준비해야 했다.(농장에선 잎채소를 뭉뚱그려 살라드라고 말했다.) 살라드는 뿌리에서 5cm 정도를 남겨두고 칼로 벤다. 그러면 다시 자라기를 반복해 대여섯 번을 거둘 수 있다. 그렇게 베어낸 살라드를 한 주먹 정도 묶어 1유로에 팔았다.
리베는 내가 묶어둔 샐러드 다발을 쥐어보고 너무 적다고 말했다. 우린 이걸 1유로를 받고 팔아. 그런데 이만큼만 주면 손님들이 실망하지 않겠어? 허리를 두들기며 밭에서 막 딴, 싱싱하기 그지없는 그 잎들을 나는 아끼고 싶었다. 이렇게 힘들게 땄는데 고작 1유로를 받고 이만큼이나 준다는 게 아까웠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1유로에 기대하는 만큼의 양을 정직하게 채워 넣었다. 정직함. 그건 농장에서 배운 또 다른 덕목이었다. 농부들은 채소로 절대 장난을 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본 농부들은 그랬다. 그러니까 채소가 비싼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나는 아직 믿는다.
AMAP에 나가는 채소도 종류별로 가격을 책정하여 정직하게 판매한다
목요일에는 AMAP이 있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 와서 채소를 받아 간다. 명단에 이름을 기입하고 값을 선불하면 회원이 될 수 있다. 우리 농장은 10유로 내외에 채소 한 상자를 꾸러미로 팔았다. 꾸러미에 들어가는 채소의 종류는 매주 달랐고 다양했다. 손님들은 그날 어떤 채소를 받게 될지 모른다. 주는 대로 받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판대에서 채소를 담아주는 역할은 회원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AMAP에서 농부의 역할은 채소를 잘 키워 가져다주는 것, 거기까지였다.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했다. 채소를 담고, 채소를 가져가고, 가끔 일찍 오거나 늦게 가는 주민들은 가판대를 차리고 치우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언젠가 쟝미셸이 나무상자 옮기는 것을 도와주는 주민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주민은 답했다.
Vous avez déjà beaucoup travaillez, reposez-vous.
(당신은 이미 일을 많이 했잖아요, 좀 쉬어요.)
채소를 키우느라 힘들었을 테니 여기서는 쉬기만 하라고. 열심히 일해준 당신 덕분에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감사해하는 것 같았다. 농부의 고된 노동을 존중해주는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일일 알바생 역할을 맡은 두 사람
한번은 꾸러미에 배추가 포함된 적이 있었다. 배추를 프랑스어로 chou chinois라고 한다. 우리가 양배추를 '양'배추라고 하듯이 프랑스에서 배추는 '중국의' 배추였다. 나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이 채소를 처음 본다는 손님들이 많았다. 배추를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 묻는 손님들에게 나는 간장에 볶아먹으라고 말했다. 사실 배추를 김치 말고 어디에 써먹는지 나도 잘 몰랐지만, 전날 그렇게 먹었는데 맛있었다. 나름 보증된 레시피였다. 다행히 그다음 주 다시 만난 손님은 내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요리했는데 참 맛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AMAP에서는 매주 같은 얼굴들을 보고 주민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쟝미셸은 주민 모두와 친했다. 늦게까지 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아직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장이 끝나면 다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가는 것은 빠지지 않는 수순이었다.
시장에든 AMAP에든 주민들은 항상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왔고 장바구니가 없는 손님에게 쟝미셸은 기꺼이 나무상자를 빌려주었다. 그러면 다음 주에 그 손님은 나무상자를 다시 들고 왔고 그렇게 나무상자를 들고 다니다 그게 자신의 장바구니가 된 손님도 있었다. 비닐봉지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채소는 종이봉투에 담아주었고 사람들은 그 종이봉투조차 재활용했다. 종이봉투는 찢겨나갈 때까지 계속 순환되었다. 언젠가 왜 힘든 유기농장을 운영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쟝미셸은 되레 나에게 물었었다.
너는 땅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없니?
그러니까 유기농장은 우리의 건강보다도 땅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건 사실 지구인 모두가 해야 하는 일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내내 그의 말을 곱씹게 되었다.
도시로 돌아온 나는 플라스틱 상자에 든 예쁜 사과와 비닐봉지에 든 당근 따위를 사 먹는다. 그런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사과를 누가 재배했는지, 이 당근을 누가 수확했는지 알 길은 없다. 어쩌면 나의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마을에서만 가능한 행운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