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멍다리츠는 우리나라로 치면 '면' 정도 크기의 마을이다. 걸어서 마을을 한 바퀴 휘둘러볼 수 있고, 거리는 특별한 일 없이 늘 조용했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서로 알고 지냈다. 한 번은 잠자리에 들기 전 내가 현관문을 잠그려 애쓰고 있으니 마리클레르가 그 문은 잠기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자기도 혼자 잘 때 문단속을 꼼꼼히 했는데 어느 날 잠금쇠가 돌아간 채로, 그러니까 문이 잠긴 채로 문을 열었는데 그대로 열리더란다. 그의 말을 듣고 손잡이를 요리조리 돌려보았지만 문은 어떻게든 열렸다. 쟝미셸에게 여긴 도둑도 없냐고 물으니 없단다.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 나는 유일한 아시안이었다. 눈에 띄게 다른 외양과 말투를 가진 이방인. 그러니까 너무나도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흐멍다리츠에서 내가 받은 시선은 환대에 가까웠다. 주민들은 내가 망설이는 동안 늘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선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bonjour-를 주고받았다. 그 봉쥬르에 큰 의미는 없을 테지만, 인사말이 니하오가 아닌 봉쥬르라는 점이 내게는 중요했다. 외모를 보고 가질 수 있는 편견 혹은 호기심은 제쳐두고 그저 같은 마을 주민으로서 나를 대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몰라도 오며 가며 마주친 사람들은 나의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인사에서, 눈빛에서, 말투에서 상냥한 무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무례함에 뒤돌아 혼자 치를 떤 적도, 공포에 숨죽여 몸을 떤 적도 없다.
바스크 지역의 건축양식. 빨간 지붕이 특징이다
마리클레르가 떠난 후 다미앙과 베로니카 부부가 왔다. 이들은 파리에서 농장학교를 다니며 귀농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부부와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다 내가 아흐멍다리츠는 참 열린 문화 같다고 말하자 다미앙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여기엔 흑인도 없고 아랍인도 없고 아시안도 없고 오직 백인뿐이다. 자기는 프랑스에서 이런 동네를 처음 봤다며 이 동네가 반대로 굉장히 닫힌 사회 같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마을 주민 중에는 백인이 아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바스크basque 지역 출신이 아닌 사람도 보기 힘들었다. 프랑스처럼 다문화, 다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에선 흔치 않은 모습이다. 훗날 리옹에서 아프리카 출신 친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남자였고 흑인이었다. 우리는 서로 왜 리옹에 정착했는지 물었고, 그는 시골에서 차별을 심하게 받아 차라리 도시가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큰 도시일수록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도 많아지니까.
내가 아시안 여성으로서 받는 편견과 그가 아프리카 흑인 남성으로서 받는 편견은 같지 않다. 어느 쪽이 더 무겁다고 말할 순 없다. 우리 모두 혐오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환대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시안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그렇듯 순종적이고 여린, 그래서 마을에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으로 각인되었을 수 있다. 혹은 내가 느꼈던 것처럼, 아흐멍다리츠의 사람들이 그저 따뜻했기 때문에 차별과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났던 걸 수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그들은 눈이 쪽 찢어진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마을을 산책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밤에 혼자 별을 보러 나갔는데 거리에서 한 남자가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흘끗거렸다. 순간 무서운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는 예의 그 bonjour-를 건네고 다시 맥주를 홀짝일 뿐이었다. 그날 밤 그의 무관심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하루는 이 마을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이곳에 정착하는 상상을 잠시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아흐멍다리츠에서 객(客)이 아닌 주민으로 남은 생을 평생 영위하면 어떨까? 그때 내가 받을 시선은 지금과 같을까?
판단할 수가 없다. 나는 고작 보름 동안 이 마을에 머물렀을 뿐이다. 아흐멍다리츠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경험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마을에 대한 나의 오롯한 감상은 곁눈질에서 비롯된 짐작과 은근한 편견으로 뒤범벅되어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프랑스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고민되어 문장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