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워홀 일기] 8. 유럽의 국경
그렇게 토요일에 우리는 국경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완전한 산맥이었다. 가파른 산을 감자 깎듯 굽이굽이 돌았다. 그런데 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쯤 나는 헉- 숨을 들이쉬었다. 여권을 놓고 왔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미 한참을 달린 상태였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섣불리 말도 꺼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솔직하게 말해야 되나, 그냥 모른 척하고 가야 되나, 그러다 검문소에서 걸리면 더 난감해질 텐데, 아 어떡해! 결국 나는 슬며시 여권을 놓고 왔다고 이실직고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운전 중이던 다미앙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C'est pas grave. On est en Europe."
괜찮아, 여긴 유럽이니까.
베로니크는 한 술 더 떠 여기가 이미 스페인 땅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의 자동차는 언젠지도 모르게 프랑스 땅을 슥 지나 스페인 땅을 밟아나가고 있었다. 국경에 검문소나 경찰 같은 것도 없냐고 물으니 없단다. 그게 바로 유럽연합이었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서 상점으로 향하는 내내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여권은 역시 필요 없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차는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고 스페인 땅에 잘 도착했다. 땅의 경계에는 각각 Spain, France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서 있을 뿐이었다.
국경에는 굵은 선이라도 쳐져 있을 줄 알았다. 군인들이 여권을 검사하고 신원을 확인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도 국경을 벗어난다는 건 모종의 '떠남'을 의미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토록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게 유럽의 국경이라니. 신분을 증명하지 않고도 나라 간 신뢰를 등에 업고 국경을 넘는 그들이 나는 신기하고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진정 섬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조금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대통령이 북쪽으로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전 세계가 떠들썩해지는 나라에서 온 나는 유럽인들의 국경 관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앞을 보면 프랑스, 뒤를 돌면 스페인. 그 한가운데 웅장하게 솟은 피레네 산맥의 가파른 골짜기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식탁 주변에는 생전 처음 보는 양인지 염소인지 모를 동물이 먹을 걸 주워 먹으려고 기웃거렸다. 누구 하나 돌을 던지거나 쫓아내는 이 없이, 손님들 사이를 제자리처럼 누비던 그 동물의 사탕처럼 땡그랗던 눈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