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언니, 외동으로 크면서 많이 외롭고 쓸쓸했지?”
“야, 그거 완전 편견이야~ 넌 인생 외로울 때 없어? 사람은 태어나서 다 똑같이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있는데 외동이라 쓸쓸하게 자랐을거 같다는 건, 외동에 대한 무지한 편견이야~ 인생은 같이 살아도 원래 외로운거야~”
외동 아들을 키우는 나는 아이가 자라면서 채워지지 않을 우애나 배려 같은 감정이 생길거라 생각했다. 마침 곁에 있던, 진짜 외동으로 자란 O에게 무심코 물었다가 호되게 혼났다. 형제, 자매가 없으면 외롭게 자랄것 같다는 생각, 혼자만 사랑받고 자라서 이기적일거라는 생각,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세상 천지에 혼자 남겨져 있을거란 외동에 대한 생각.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당연히 그럴거라고 확신하고 물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O를 처음 만난 곳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한 직장이었다. 나보다 먼저 일하고 있던 O는 통통하고 하얀 얼굴에 뿔테 안경을 낀 엣되보이는 사람이었다.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웃으며 다가가도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속내를 알 수 없어 대하기가 어려웠다. 어색하면 웃고 보는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가르치고 데리고 다니는 본분에는 게으르지 않았다.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회사 구성원이 죄다 이어져 있는 가족회사 였는데 거기서 가족이 아닌 사람은 O와 나뿐이었다. 그녀가 무심히 나를 챙긴것도 우리만 동떨어져있다는 동질감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손이 빠르고 눈치도 빠른 O는 회사 업무를 빠르게 습득했고 서투른 내게 전달해 숙달시켰다. 그렇게 손발이 잘 맞아갈 무렵, 사장님이 우리를 불렀다. 사업을 확장해 경기도 부천으로 가야할 팀원으로 우리도 함께 가겠냐고 물었다. 제안이긴 했지만 확정을 짓고 이야기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우리가 이 회사에 뽑혀 일하게 된 이유인것 같았다.
부천으로 가는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 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회사에서의 처지처럼 외딴곳에 와있었다. 회사에서 잡아준 숙소는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는데 이는 잦은 야근을 유발했다. 일을 멈춰두고 집에가서 해야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어 약속이 생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우리는 밤이 늦도록 일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그 시간을 버텼는지도 모른다.
부천으로 가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정시키겠다던 사장님의 포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일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우리는 지쳐갔다. 늦여름에 부천으로 올라갔던 우리는 그 해가 지나기 전에 다시 부산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나와 O는 차례대로 퇴사했다.
10년전의 그 1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 생활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오랜 만남이 유지될 수 있을까? 잠깐 공백의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명절 연휴나 아이 방학때 친정을 가게 되면 꼭 시간을 맞춰서 얼굴을 봤다. 공통된 이야기가 하나도 없지만 서로의 근황, O의 회사 생활, 나의 육아 이야기를 토로하다보면 눈 앞에 있던 음식이 다 사라지고 배도, 마음도 불러 있었다.
처음에는 무심한듯 했던 O의 표정이,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응, 그렇구나’ 로 수긍해주는 느낌이다. 과한 액션은 없지만 그저 약간의 끄덕거림과 눈맞춤으로 내 이야기가 O에게 가닿아 있었다. 슴슴한 국물을 떠마실때의 편안함이었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있는듯 없는듯 스며들어 오래 만날 수 있는 싶은 사람. 나는 상대에게 어떤 쪽에 있는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