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오랜만에 아이가 네, 다섯 살에 다녔던 어린이집의 친구와 엄마들을 함께 만났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매일같이 만나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사로 뿔뿔이 흩어지고는 자주 만나기 어려웠다. 가끔 만나는 사이라 어색해할 줄 알았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금방 서로에게 익숙해져 놀았다.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서로에게 첫 친구라는 개념이 잡힌듯했다. 셋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서로 의지했던 시간이 그들을 더욱 돈독하게 만든 것처럼.
아이들은 처음에 아파트 단지 어린이집을 같이 다녔다.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이다 보니 4세까지만 운영했는데 세 살에서 네 살로 올라가는 시점에 원생이 많다는 이유로 원생을 정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열명 중에 반이 퇴소해야 했는데 당연히 모든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원장은 가장 합리적이게 보이는 구실을 찾아 조건에 맞춰 아이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첫째로 부모가 맞벌이 등록이 되어 있는 아이들, 다음으로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들이 조건에 해당했다. 외동에 부모가 외벌이인 내 아이는 계속 다닐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퇴소 대상자였다. 결정이 나고도 당장 어디로 어린이집을 옮겨야 하나 막막한 마음에 원장을 찾아가 설득했다. 모두가 다 같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원장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보다 원의 효율적인 운영만을 내세웠다. 그 이야기를 들은 H는 어린이집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고 자진 퇴소를 선택했다.
”아, 그때 언니처럼 쿨하게 그만둔다고 이야기할걸. 지나고 보니 괜히 애썼다 싶네~“
“그땐 그게 최선이었지~”
포기할 수 없었던 나를 도와 H는 자신이 빠지니 한 명이라도 더 넣어달라고 같이 원장을 설득했다. 나는 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남으려고 애를 썼고 같이 원장을 설득해준 H덕분에 무작위로 공을 뽑아 한 명의 아이를 더 받아주기로 했다. 뽑기로 공정하게 사정한 내가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때 옆에서 함께 이야기해준 H의 도움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상황에 어떤 이는 내 일이 아니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고 어떤 이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애타는 나만 종종걸음으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소수였다. 이미 정해놓은 답에 혼자서만 반대표를 들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이렇게 에너지를 쏟는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던 건 내 편에 서서 함께 해준 H가 있었기에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생기면 나도 누군가가 작은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