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실궁리 Oct 26. 2021

가다 보면 나오는 길이 있다

무던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가만히 듣는다. 블루지한 재즈 음악이나 청량감이 느껴지는 뉴에이지 피아노 음악이 흘러나오면 카페에 가지 않아도 카페에 있는 기분이다. 적막한 공간에 음악이 흐르면 바뀌는 그 분위기를 좋아한다. 감성이 몽글몽글해지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연결된다.


 음악, 미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잘 못하는 영역에 대한 기대와 환상 때문일 거다. 고등학교 때 잠깐 만났던 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입시 미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까까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평범한 아이였다. 정작 만날 때는 걔의 그림을 본 적도 없고 미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본 기억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 남자아이였는데 걔가 다시 보이게 된 때는 헤어지고 각자 대학을 들어가고 난 다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학기 초가 지나고 가을이 오니 학교마다 대학 축제가 열렸다. 우리 학교 축제도 즐겼지만 다른 학교 축제를 보러 가는 것도 왕왕 있는 일이었다. 그때 다른 학교에 다니던, 헤어져 연락도 안 하던 아이에게 연락을 한 거다. 너네 학교 축제하냐, 나도 가려는데 어떠냐, 그러다가 자기가 과주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로 오는 게 어떠냐는 초대를 받았다. 거의 2년 만의 재회였다.

 학교 건물 앞의 공터에 듬성듬성 천막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안내받은 자리는 플라스틱 식탁에 얇은 비닐이 깔려 있었다. 그 위에는 비닐의 윗부분만 뚫린 종이컵 뭉치와 나무젓가락을 담은 통이 나란히 서있었다. 호기롭게 연락을 해 찾아갔던 용기와는 다르게 번지는 불편함에 음식을 시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미술학도들이라 그런지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이 특이하고 튀었다. 그 아이는 검은 뿔테 안경에 검정 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지 옆면에 박힌 은빛 징이 돋보였다. 수줍은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특이한 옷차림이,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해 보이는 그들이 특별해 보였다. 나에게는 없는 저런 센스들을 저들은 어디서 얻게 되었을까, 타고나야 하는 건지, 그들만 어디서 특별한 무엇을 배워서 다른 건지 궁금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져 걔도 다시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뭘 다시 시작해보자거나 하는 연애의 감정은 아니었다. 나도 나만의 특별한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을 한 계기였던 것 같다.


 예술적 센스가 갑자기 턱 하니 생겨서, 원래 재능이 있어서 미대를 가고 음대를 가는 것만 같았던 그들은 무던히 갈고닦는 끈질긴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미술사에 대해 공부하고 알게 되면서 작품들이 '뿅'하고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길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하고 의미를 찾고 무던히 행하는 사람들. 그들이 예술가들이다. 엄청난 연습과 계속 행하는 동력.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있는 정신임이 틀림없다.

 화려한 아이돌도,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직장인들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우리 모두는 어느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다. 그런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가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어딘지 보이지 않을까.


이전 08화 우정에도 성장이 필요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