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실궁리 Nov 09. 2021

우정에도 성장이 필요해

s가 보여준 용기


"야, 니네가 뭔데 내 친구들 괴롭히는 건데!"


 이건 어린애들 싸움이 아니었다. 여고생들의 신경전이고 자존심이 달린 앙칼진 말싸움이었다. 한 학년에 열반은 넘는 학급이 있었고 세 학년이 함께 사용하는 식당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걔네들은 우리와 같은 봉고를 타는 무리였다. 그때만 해도 30분 거리의 학교를 등교하는데 같은 동네에 있는 몇 명이 모여서 한 봉고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우리가 먼저 타서 봉고 제일 뒷열과 중간 열에 앉았고 걔들은 앞칸에 마주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것이 불만이었다. 다 같이 타는 봉고에서 쪽잠자는 다른 이들은 배려하지 않고 자기네들만 타고 있는 마냥 떠들어대는 게. 똑같이 겪어보라고 우리가 먼저 타서 앞에서 앉아 웃고 떠들고 그들을 뒷 구석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안 좋은 감정은 계속 쌓이고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았았다. 아침마다 불편했다.


 s는 같은 봉고를 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먼저 밥을 먹고 있던 걔들이 배식을 받아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들릴 정도로 비아냥거렸다. s는 그대로 그쪽으로 다가가 식판을 엎어버렸다. 국물이 쏟아졌고 '꺅' 소리가 울러 펴졌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싸움이 시작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라 눈알만 굴렸다. 그러면서도 당황한 낌새를 들키고 싶지 않아 짝다리를 잡고 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s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지만 친구들을 위해 나서서 상황을 제압해버렸다.


 하지만 이후에 s를 제외한 우리와 걔들의 관계 대립은 더욱 극단으로 치솟았다.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치면 더 의식해서 흘겨봤고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다 그 팽팽한 줄이 끊기는 날에 "뭘 쳐다보는데"라며 쏘아붙였고 "니는 왜 쳐다보는데" 받아치며 서로 머리채를 잡는 사태까지 갔다. 각자의 친구를 뜯어말리며 불편한 감정이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한 팀이 봉고차를 바꿔서 아주 마주치지 않게 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확실히 기억이 나는 건 그때 s를 향한 우리의 반응이었다. 어린 마음에 너 때문에 사이가 더 틀어져서 불편해졌다는 걸 드러냈던 걸까. 고마움보다는 외면을 했다. 우리를 위해 나섰던 s에게 되려 오지랖이 넓다며 핀잔을 주거나 놀렸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 그때 s의 마음을 물었다. 솔직히 내가 왜 나섰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미안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자신이 편들었던 친구들에게 그 마음을 외면당했을 때의 실망감이란.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마음을 감성이 풍부했던 청소년기에 겪었을 거라 생각하니 아직도 친구로 곁에 남아있어 준 s가 고마웠다.


 우정도 나이가 들어간다. 그 시절 어물쩡 넘겨버렸던 이야기를 되짚다 보니 s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생각, 가치관을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정도와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서로 맞아 있음을 느꼈다. 추억을 공유하면서 마음까지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다니 우리의 우정도 함께 성장한 게 아닐까. 모든 게 빨리 진행되고 그만큼 포기도 빠른 세상이다. 딱 맞는 새로운 사람을 찾기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을 더 면밀히 살펴보자. 그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서로 맞춰간다면 관계는 더 튼튼하고 견고 해질 것이다.





이전 07화 평생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